애니 홀이 역사에 남을 영화인 이유

포스트모더니즘과 애니 홀

영상 보기 : 우디 앨런 - 애니 홀

<애니 홀>이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 잘 만든 영화인데 제가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누군가를 소유한다는 것? 아니면 누군가와 섹스를 한다는 것? 아닙니다. 집착은 집착이고 섹스는 섹스고 사랑은 사랑입니다. 이들은 서로 독립적인 겁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몸을 허락했다고 해서 마음까지 허락한 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이 둘을 철저하게 분리해야 합니다. “너 나랑 섹스했을 때 좋아했잖아. 그런데 왜 그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육체적 즐거움은 육체적 즐거움일 뿐입니다.

여러분, 현대 예술은 반드시 현대의 세계관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 시대의 예술 이론이 밝혀낸 가장 뛰어난 성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술을 감상하기에 앞서 우선 현대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웹사이트의 인문학 이해하기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애니 홀>이 뛰어난 영화인 이유는 첫째, 현대의 세계관을 준수하기 때문이고 둘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현대에 있어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게 되었습니다. 신에 대한 모든 언명이 신성모독이듯이 사랑에 대한 모든 언명은 사랑에 대한 모독입니다. 현대가 이룩한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는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알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내렸다는 겁니다. 존 로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매달렸고 결국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인간은 세계 그 자체를 파악할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간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에 없으면 세계에도 없는 겁니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언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연구해야 할 건 세계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연구해야 할 건 우리의 언어입니다. 언어의 구조와 작동 양식을 알면 우리는 세계의 구조와 작동 양식 역시 알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게 비트겐슈타인이 <논고>의 전반부에서 행한 작업입니다. 그는 인간이 세계를 언어(정확히는 명제)를 통해 인식한다고 말하며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건 과연 어떤 명제가 논리적인 명제인가라고 말합니다. 논리적이지 않은 명제는 사이비 명제이고 따라서 소멸되어야 할 명제입니다. 앞서 말했듯 인간은 언어의 한계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언어는 교묘하게 위장을 해서 자기 한계를 넘어서려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신에 대한 언어이고 사랑에 대한 언어입니다. 신과 사랑에 대한 모든 언어는 사이비 명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현대 철학은 절대로 신과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인간의 인식 능력 밖에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따라서 신과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사이비 명제입니다. 우리는 그저 신과 사랑에 대해 ‘침묵 속에서 지나가야’ 할 뿐입니다.

일단 여기까지만 알도록 하죠. 지금은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아니니까요.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글은 제가 추후에 자세하게 올릴 것입니다. 자, 이제 현대 예술은 문제에 봉착합니다. 현대 이전의 예술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예술이었습니다. 토마스 만이나 톨스토이 모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매우 많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합니다. 현대에 있어 이들의 예술은 단지 교육용이나 현실 도피용으로 필요할 뿐입니다. 현대는 톨스토이가 아니라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저 어떤 사실만을 나열할 뿐 톨스토이처럼 의미를 생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의미는 현대에 와서 증발했습니다. 의미 자체가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예술이 만약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면 그건 사이비이고 과거의 잔류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대 예술은 어떤 메시지도 전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달할 메시지 자체가 소멸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술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들이 과거에 이용했던 모든 재료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의도, 사랑도, 우정도, 신도, 애국심도 다 증발해 버렸습니다. 이때 이들은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내는데, 그게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너희들 말이 다 맞아. 우리는 이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없어. 그런데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단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아! 이렇게 하자.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이게 단지 ‘이야기’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야. 이건 단지 내가 만든 가상의 세계일 뿐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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