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보기 : 미카엘 하네케 – 아무르
이 영화는 놀랍도록 차갑게 인간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어떠한 감성팔이도 없으며, 심지어 관객의 감정을 격양시키려는 시도조차 없다. 스토리 역시 없다.
내가 늘 주장하지만 현대 예술에서는 ‘무엇’을 말하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어떻게’ 표현하는가다. 카버의 소설에 무슨 스토리가 있는가? 그러나 그는 인간의 위선을 소름 끼치도록 차갑게 묘사하고 있다.
왜 그런가? 왜 도대체 현대 예술은 이렇게 차갑게 무언가를 보여주기만 하는가? 현대 예술에 있어서 감정 이입은 시대착오다. 감정 이입은 의미를 생산한다. 거지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순간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약자의 편에 선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갖게 된다. 인간은 이토록 나약하고 오만하다. 그래서 현대 예술은 애초부터 감정이입을 하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먼 거리에서 차갑게 묘사할 뿐이다.
이 영화가 만약 노인의 고독한 삶이나, 여성의 힘듦이라는 개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해 보자. 그 순간 영화는 병신이 된다. 창작자는 메시지를 넣고 싶은 유혹에 빠지곤 하는데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그 유혹을 단숨에 물리쳤다. 그리고 그 용기가 이 영화를 고전으로 만들었다.
멍청한 사람들은 예술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거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과는 이야기조차 나누지 말아라. 멍청함은 전염된다. 하향 평준화처럼 무서운 건 없다.
이 영화의 표현 양식이 미술로 따지면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예술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밖에 없는 데 둘 다 감정 이입을 철저하게 배격한다. 배격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정말 훌륭한 영화이니 꼭 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 영화의 차가움이 감성팔이보다 얼마나 감동적인가를 느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