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vs 시진핑 순방: 동남아 지정학 딜레마 분석

백악관에서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와 시진핑의 전용기가 동남아 상공을 비행하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The Economist 2025년 4월 12일호

Article: Xi Jinping may try to woo the victims of Donald Trump’s tariffs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던진 관세 폭탄의 파편은 태평양을 건너 동남아시아의 심장을 강타했다. 캄보디아의 의류 공장주들은 하룻밤 새 49%라는 재앙적 관세율 앞에서 망연자실했고, 베트남은 46%, 태국은 36%, 인도네시아는 32%, 필리핀은 17%라는 살인적인 숫자를 마주했다. 반도체 덕분에 일부 면제를 받은 말레이시아조차 24%의 족쇄를 차게 될 운명이었다. 심지어 미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하는 자유무역의 모범생 싱가포르마저 10%의 철퇴를 피하지 못했다. 로렌스 웡 싱가포르 총리가 의회에서 선언한 "규칙 기반 세계화와 자유 무역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미국 스스로가 구축했던 시스템의 붕괴를 목도한 자의 탄식이었다. 질서의 창조자가 스스로 혼돈의 화신이 된 순간, 게임의 법칙은 다시 쓰여지고 있었다.

바로 그 혼돈의 틈새를 파고들듯, 시진핑의 전용기가 동남아시아 상공을 가로지른다. 베트남(4월 14일), 말레이시아를 거쳐 관세 폭탄의 직격탄을 맞은 캄보디아(4월 17일)로 이어지는 그의 순방은 수개월 전 계획된 일정이라 할지라도 기막힌 타이밍의 지정학적 연극처럼 보인다. 트럼프가 휘두른 예측 불가능한 몽둥이에 신음하는 국가들에게 세계 2위 경제 대국의 지도자가 내미는 손길은 단순한 위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미국에게 벌받은 작은 나라입니다. 시진핑 주석의 방문은 우리의 자신감을 북돋아 줍니다. 매우 감정적입니다." 한 캄보디아 관료의 말에는 약소국의 설움과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함, 그리고 새로운 기회에 대한 희미한 기대가 뒤섞여 있다. 마치 폭풍우 속 난파선에서 발견한 거대한 함선의 그림자처럼.

그러나 동남아시아는 그리 만만한 무대가 아니다. 이 지역의 국가들은 냉혹한 현실주의자들이며, 감상적인 연대에 기댈 만큼 순진하지 않다. 트럼프의 발표 직후, 그들은 보복 관세라는 감정적인 대응 대신 협상의 테이블을 택했다. 베트남의 토 람 국가주석은 가장 먼저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자국 관세 철폐를 제안했고 캄보디아 총리 역시 관세 인하를 약속했다. 말레이시아는 공급망과 핵심 광물 협력을 제안하는 대표단을 워싱턴으로 급파했다. 그들의 신중한 실용주의는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임이 드러났다. 트럼프는 협상에 응하며 보복에 나선 국가들만 징벌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거친 폭군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하는 법을 아는 자들의 생존술과 같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명분이 아니라 실리이며, 생존 그 자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명백하다. 중국이나 EU와 같은 거대한 경제 블록이 아니기에, 미국에 대한 의미 있는 보복을 감행할 힘(leverage)이 없다. 아세안(ASEAN) 의장국인 말레이시아가 지역 공동 대응을 모색했지만, 경제 구조와 이해관계가 판이한 회원국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분석가들이 아세안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이유다. 또한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처럼 미국과 긴밀한 안보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은 섣불리 무역 문제와 안보를 연계하려 하지 않는다. 고립주의 성향을 보이는 트럼프에게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의 이번 순방에서도 새로운 안보 협정이 체결될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없다.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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