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신학과 싸웠지만, 그 둘은 사실 하나의 뿌리를 가진다

모노크롬 흑백 톤으로 클로즈업된 인물의 눈 모습, 객관성을 가장한 권력의 시선을 상징

니체 - On the Genealogy of Morality

과학이라 불리는 그 엄숙한 건축물은 스스로 객관성의 제단 위에 세워졌노라 공언한다. 마치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견고한 반석이 실재하며, 모든 종합적 인식이 경험의 더러운 흙탕물을 딛지 않고도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순수한 계시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보라, 그 순결을 가장한 과학자야말로 현대의 옷을 입은 신학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과학자와 신학자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다고 믿는가? 천만하다. 그들은 '진리'라는 동일한 주화를 양면에서 번갈아 매만지고 있을 뿐이다. 과학은 신학의 세련된 변주이며, 가장 교묘한 형태의 신앙이다. 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하나의 해석이며, 하나의 정치적 선언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이것이 과학의 판결이오! 그러므로 물리적 세계는 마땅히 이렇게 해석되어야만 하오!"라며 만물의 이마에 낙인을 찍는 행위, 이것이 바로 과학이 자행하는 입법 활동의 본질이다.

허나 이 입법의 권능이 과연 실험실의 흰 가운을 걸친 자에게서 순수하게 발원하는가? 권력의 복도에서 암약하는 권력의 그림자 없이, 그저 순수한 지적 탐구만으로 세계의 의미가 재단될 수 있다고 믿는가? 과학자가 동시에 정치적 존재로서 자신의 해석을 관철할 힘을 가질 때, 오직 그때에만 과학은 세상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권능을 얻는다. 과학적 발견 그 자체, 유리알처럼 투명한 진리 조각 그 자체는 아무런 고유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그것에 값을 매기고, 생명을 불어넣거나 혹은 사장시키는 것은 언제나 정치적 의지이며, 시대의 지배적인 힘의 배치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소! 나는 자유로운 사상가이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관찰자요!"라고 외치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현실에 대한 끝없는 불평과 탄식뿐이다. "보시오, 이 세계는 잘못되었소! 나의 머릿속에는 저 완전무결한 이상 세계의 청사진이 있소! 세계는 마땅히 이 청사진대로, 나의 이성적 구상대로 재단되어야 마땅하오!" 이 얼마나 오만한 자기기만인가! 그들은 현실의 복잡성과 역동성을 자신의 빈약한 이상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며,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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