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자동차 붕괴: 이건희 사재출연의 진실과 계열사 총동원

1990년대 말 삼성자동차 부실화와 이건희의 사재출연

글 읽기 : 차기태 - 이건희의 삼성, 이재용의 삼성

삼성자동차가 부실화되어 가던 시기, 이건희가 대표로 있는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특히 삼성전자, 삼성전관(현 삼성SDI), 삼성전기 등 전자 계열사들은 그룹 내에서 벌어진 우회출자 및 자금 지원 작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 정점에는 이건희의 의사 결정 구조가 있었다. 그는 그룹 전체를 통제하며 필요하다면 정상적으로는 연결되지 않을 경로로도 자금을 흘려보내 삼성자동차라는 ‘구멍’을 메우려 했다.

1998년 3월, 삼성자동차가 중형 승용차 SM520을 출시했을 때 나라는 IMF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가 있었고 기업 파산과 실업이 속출했다. 경제적 불확실성은 극도로 커졌고 소비 여력은 줄어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형차를 팔아야 했던 삼성자동차는 출범 초기부터 막대한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질적 문제는 그 적자를 메우는 방식이 ‘금융 계열사와 전자 계열사의 지원’이라는 우회적 경로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삼성전자의 존재가 중요해진다. 전자 부문은 이건희가 주도한 신경영 및 반도체 투자로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은 현금 흐름과 기술적 권위를 갖춘 축이었다. 삼성전자, 삼성전관, 삼성전기 등의 실적이 견조해야만 삼성이 채권단과 시장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그룹들은 아일랜드 소재의 Pan Pacific 같은 외국 법인을 통해 삼성자동차에 우회출자하는 데 동원됐다. 참여연대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어 1998년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증권감독원이 삼성전자와 삼일회계법인에 ‘주의’ 조치를 내리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사업보고서에서 삼성전자는 삼성자동차 지분 옵션거래(풋옵션) 내용을 누락했는데 이것이 중대한 회계정보 공개 위반으로 간주된 것이다.

전자 계열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댔는지를 좀 더 들여다보면, 삼성전자가 Pan Pacific과 맺은 합작투자 계약에는 ‘풋옵션’이라는 독특한 조건이 들어 있었다. 이는 일정 시점이나 상황에서 Pan Pacific이 보유한 삼성자동차 주식을 삼성전자(또는 다른 전자 계열사들)에게 되팔 수 있는 권리다. 겉보기에는 해외투자를 통한 ‘신주 발행’이나 ‘전략적 파트너십’ 같은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삼성전자 등이 결과적으로 자동차 사업의 손실 위험을 떠안는 구조였다. 그래서 1999년 7월 20일, Pan Pacific이 이 풋옵션을 행사하자 삼성전자는 2662억 원을 지급해야 했다. 이건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간다는 의미였고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결코 반가울 리 없는 지출이었다.

이건희는 왜 이런 식의 자금 흐름을 용인했을까. 당시 삼성그룹은 자동차 사업 진출을 ‘미래 산업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여기고 있었다. 반도체와 전자에서 맹위를 떨치던 삼성이 자동차까지 성공시킨다면,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종합 메가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건희 본인은 나쁜 시장 타이밍과 고비용 구조를 의식하면서도 삼성이 전자 분야에서 쌓은 자금·신용력을 활용하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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