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보기 : 2023년 11월 27일 해외 주요 뉴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라틴 아메리카는 경제가 엉망입니다. 그곳은 경제적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비단 라틴 아메리카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유럽에도 경제적 합리성이 떨어지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이탈리아나 그리스 같은 곳 말입니다.
저는 언제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글을 상세하게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자본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앞서나갑니다. 이들은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축적하기 위해 돈을 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는 자본주의 정신의 핵심이 ‘죽는 순간까지 일한다.’와 ‘축적하기 위해 돈을 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항상 소비에 들떠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축제를 원하며 경제 활동에 있어 어떠한 금욕주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경제가 엉망인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현대 사회의 두 축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매우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자는 인간이 옳고 그름을 알 수 없다는 세계관을, 후자는 어떤 삶이 구원 받을만한 삶인지 알 수 없다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실존주의적 삶을 요구합니다. 실존주의적 삶이란 ‘내 삶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으며 어떠한 노력으로도 내 운명을 바꿀 수 없다.’와 ‘내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나는 내 운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실존주의자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내게 주어지는 매 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뿐입니다. 실존주의자는 내가 현재를 열심히 사는 인간이라면 내 운명이 나쁠 수는 없다는 한 올의 실보다 얇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게 실존주의자가 말하는 ‘자유의지’입니다. 실존주의자가 말하는 자유의지는 기독교가 말하는 자유의지와 완전히 다릅니다. 실존주의자는 내가 ‘무엇’이 되는가는 선택할 수 없고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어떻게’ 사는가 뿐입니다. 따라서 실존주의자는 매 순간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게으르면 내 삶은 그 순간 전락하는 겁니다. 기독교는 죄를 지어도 고해성사를 하면 용서받습니다. 실존주의는 저런 기독교의 윤리를 경멸합니다. 실존주의는 죄와 고해성사가 한 쌍으로 움직이는 기독교 윤리를 거부하고 엄청난 결의로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여 게으른 삶을 살면 그 사람의 삶은 전락한 것입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윤리로 삶을 장착한 사람들이 미국에 많습니다. 아니, 어쩌면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비극적 세계관을 받아들인 나라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경제적으로 강대국인 것입니다. 미국인들의 잔인한 현실주의는 거대한 비극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삶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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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국가인 아르헨티나에서 자유주의자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아르헨티나를 시장 경제 국가로 바꿀 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심지어 중앙은행도 없애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아르헨티나가 시장 경제 국가가 될 수 있을까요? 국가의 보조금에 기대고 싶어 하는 기생충적인 정신 상태를 과연 바꿀 수 있을까요? 자기 스스로 삶을 꾸려나간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국가 보조금이라는 꿀맛을 본 국민이 과연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국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