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평가 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글 읽기 : 버트런드 러셀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러셀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은 이해가 안 간다. 데이비드 흄을 읽고 비트겐슈타인을 읽어보자. 러셀의 글은 너무 지루해서 읽을 수조차 없다. 그는 자기 머리의 부족함을 명성으로 메꾸려한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글을 읽어보자. 데이비드 흄을 읽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러셀은 왜 이렇게 똑같은 소리를 주저리주저리 반복하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또 할까? 비트겐슈타인처럼 “인과관계에 대한 믿음은 미신이다.”라고 말하면 끝인데 뭔 소리를 저렇게 많이 할까? 난 정말 러셀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간다. 러셀은 흄이나 비트겐슈타인에 비교하면 아예 책을 읽을 수가 없을 정도다.

어찌 되었든 러셀이 기독교에 관해 이야기했으니 나도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일단 철학자는 종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가 없다.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걸 숭배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신앙은 다르다. 신앙은 종교와 완전히 다른 거다. 신앙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으로 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종교는 신에 관한 것이지만 신에 관한 것 이상으로 정치적인 거다. 따라서 종교는 사회학이나 경제학의 연구 대상이 되지만 신앙은 그렇지 않다.

현대에 있어서 종교는 필요 없다. 종교는 과거의 잔류물이다. 현대는 신앙만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계속 말했듯이 현대는 인간이 신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감히 누가 신에 대해 설교하는 헛짓거리를 한단 말인가? 신에 대해 설교한다는 것은 자기가 신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가정하는데, 그 자체가 미친 소리라 할 수 있다. 타락하지 않은 인간은 도저히 저런 짓을 할 수가 없다. 신에 대한 모든 언명은 신성모독이다.

따라서 현대는 그저 신 앞에 단독자로 나갈 뿐이다. 그저 여기에 신을 갈구하는 내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신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물론 절대 신에게 도달할 수 없다. 신에게 어떻게 도달한단 말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 존재에 대해? 따라서 신앙은 죽는 그 순간까지 계속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신을 향해 나아가는 그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이게 현대의 신앙이다.

종교와 신앙이 다르다는 걸 확실히 알기 바란다. 그리고 러셀 책은 많이 읽을 필요가 없다. 러셀이 수학에 대해 쓴 것 몇 개만 읽으면 된다. 책을 읽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건 무엇을 읽을까가 아니라 무엇을 읽지 않을까다. 책 많이 읽는다고 허세 부리는 인간들은 멀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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