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엘리트 21: 물을 수 없는 질문
2023.12.28, 꿈이 현실이 되길 원할 때
“신자가 아니신가요?” 미사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가는 길에 신부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이렇게 말하려다 스스로 민망해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교회를 나가지 않은 지 몇 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성령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으며, 마음 속깊은 곳에서는 성경을 고대 그리스 신화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아니신가요?” 미사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가는 길에 신부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이렇게 말하려다 스스로 민망해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교회를 나가지 않은 지 몇 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성령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으며, 마음 속깊은 곳에서는 성경을 고대 그리스 신화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정말 중요하지. 철학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똑같거든. 철학이 왜 중요한 거 같아? 삶의 의미를 알려줘서? 올바른 사회란 어떤 것인지 알려줘서? 아직도 이런 개소리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개소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지. 이런 사람들은 철학이 오히려 삶을 망치지.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실패를 감추는 도구로 철학을 활용하니까. 뭐, 나는 돈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자위하는 거지. 멍청한 사람은 철학 하면 안 돼. 철학에 민주주의는 없어.”
“넌 스스로에게 진실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마주할 용기가 없고 열등감에 찌들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지.”
“그런 적 있어? 살다가 산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적 있어?”
쓸모 없이 보내는 날들. 사는 건지 죽은 건지 알 수 없는 날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보았다. 도망자이자 비겁자인 나를. 누가 나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나 말고 누가 내 삶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는가? 비겁한 자신이여! 왜 나를 돌아보지 않는가! 그리고 왜 변하려고 하지 않는가! 난 달라져야만 한다. 난 정말 달라져야만 한다.
그가 토를 했다.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했다. 내가 졌다. 나는 구토 위에 무지막지한 양의 휴지를 덮었다. “고객님 잠시만요.” 고객 새끼가 비킬 생각을 안 하고 의자에 앉아있다.
아, 엄마! 당신이 내 대학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당신이 당신 동료의 자식들과 나를 얼마나 비교했는지, 그리고 내가 그들을 입시에서 이겨서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나는 봤어요. 엄마, 행복한가요?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고 살면?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고 살면?
무엇인가? 내 마음속에 있는 이 어둠은? 어둠은 내 처지의 원인인가, 아니면 결과인가? 아! 나를 보라. 당당히 서울로 올라갔던 나는 이제 고개와 어깨를 내리고 또 내린 채 시골로 돌아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시골에 사는 인간들의 자위도구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살인사건 일어나신 거 아시죠? 전 놀라지는 않았어요. 인간은 다른 인간을 죽이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까요. 살인 했을 때 자신에게 닥칠 법적 처벌의 두려움 때문에 그 욕망을 간신히 누르는 것이죠. 인터넷이나 SNS의 댓글 창은 좋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살인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욕구불만을 풀 수 있는 장소가 댓글 창이니까요. 물론 저는 지금 별 볼 일 없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뛰어난 인간은 욕망을 승화할 줄 알죠.
하나둘 하나둘, 너의 눈은 감기네 하나둘 하나둘, 나의 오랜 친구야 하나둘 하나둘, 내 칼날은 네 목에 하나둘 하나둘, 너의 눈은 감기네
나는 몰래 스타트업을 그만두었어. 미래가 없었기에. 어떻게 합리화할 수 있을까? 친구들 앞에서? 나는 그들에게 내가 스타트업을 선택한 거라 말했는데. 대기업도 갈 수 있고 행정고시도 합격할 수 있지만 창의적인 내게 맞는 일을 ‘선택’했다고 말했는데. 불가능하잖아. 합리화가. 그래서 도망쳤어. 고향으로. 그렇게 난 가족과 고향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네. 모두가 나를 보며 자기 위안을 했지.
그의 음악이 들린다. 그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길로 들어갔다. 매일 새벽마다 그는 동대문에서 옷을 나르는 일을 했다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그 돈으로 꿈을 향해 나아간 거야. 내가 서울대학교라는 간판에 안주할 때,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 집중하지 않고 나를 꾸며내려 노력할 때, 그때 그는 자기를 마주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네. 아니, 그는 두려워도 계속 자신을 마주했네. 진실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졸업을 하게 되었어. 그리고 취업에 실패했지. 친구들은 회계사가 되었고 사무관이 되었고 로스쿨생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어.
그는 내게 말했어. 대학을 자퇴하겠고. 대학이 자기를 더 멍청하게 만들고 더 비겁하게 만들고 더 좁게 만든다고. 무엇을 위해? 나는 물었네. 그는 말했어. 음악을 하겠다고. 자신이 서울에 온 이유 역시 원래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혹시나 대학교수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넌 정말 멍청한 인간이야. 대학 교수만큼 고리타분한 인간도 없지. 생명력도 없고 열정도 없지. 대학이라는 간판 뒤에 숨이 자기 몸집을 부풀리네. 그것이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 탁월한 학자는 매우 드물어. 탁월한 학자는 실력도 없고 병신 같은 교수들에게 공격을 받아 사라지네. 거대한 거짓. 그곳이 대학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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