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지 말아라
2023.11.20, 일기
우물쭈물 하지 마라.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현대에 있어 우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다. 기독교에서의 예정론이 현대의 실존주의이고 이게 우리의 삶이다. 그러니 뭘 두려워하는가? 죽음? 좌절? 실패? 죽으면 죽고 실패하면 실패한 것이다. 뭐가 문제인가? 우물쭈물하지 말아라. 실존적으로 살아라.
우물쭈물 하지 마라.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현대에 있어 우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다. 기독교에서의 예정론이 현대의 실존주의이고 이게 우리의 삶이다. 그러니 뭘 두려워하는가? 죽음? 좌절? 실패? 죽으면 죽고 실패하면 실패한 것이다. 뭐가 문제인가? 우물쭈물하지 말아라. 실존적으로 살아라.
나는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순간처럼 살아왔는가! 그러나 앞으로 더 변할 것이고 더욱더 순간을 살 것이다. 나는 더 차가워질 것이고 그 결과 더 뜨거워질 것이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을 찾을 것이고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을 잘라낼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바쁘고 그게 좋다. 죽는 줄 모르고 죽을 것이다. 가차 없는 인간이 되어라!
사람들을 과대평가하지 말아라. 많은 이들이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할 줄 모른다. 그저 흘러가는 데로 시간을 보낼 뿐이다. 데카르트가 인간을 무기물로 취급했을 때, 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무기물이다. 내가 해야 할 것은 그들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것이지 그들과 소통을 하는 게 아니다. 왜인가?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를 원하는 자는 부를 원하는 것 이상으로 가난을 경멸해야 한다. 당신은 종종 친절한 부자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난한 사람을 존중할거라 생각하는가? 아, 그대여! 그대는 어찌 이리도 순진한가!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경멸한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은 멍청하고 게으르며 부자에게 기생하여 목숨을 부지하는 벌레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다. 내가 철학 글 내내 말했듯이 인간은 자신만의 세계를 살고 있다. 내 세계와 교집합이 있는 인간을 만나는 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기대할 게 하나도 없다. 당신이 플라톤을 읽고 흄을 읽고 토머스 쿤을 읽는다고 하자. 당신이 누구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건 누군가를 더 만나는 게 아니다. 필요 없는 인간, 쓸떼 없는 인간을 끊어내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 이는 물론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나 자신에게 솔직하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는다면 그냥 미움을 받으면 된다. 다른 길이 있겠는가? 카네기 책을 한 번 읽어보기는 하겠다.
나는 패배자를 경멸하는가? 그렇지 않다. 내가 경멸하는 건 패배자가 아니다. 내가 경멸하는 건 자신의 패배를 위장하려는 인간이다. 패배자면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잘못을 돌아보고 고칠 수 있다. 그러나 거짓된 인간은 패배를 교묘하게 감춘다. 대부분은 도덕으로. 내가 이런 인간을 경멸하는가? 그렇다. 나는 나의 관계이기 때문에 이런 인간과의 관계는 면도날로 잘라버려야 한다.
꿈이 나를 잡아먹는구나. 나를 위해 꿈이 존재한다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꿈을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나의 길이구나. 소멸의 길을 두려워하지 말라.
핵심만 간결하게 적어라. 오컴의 면도날은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라. 긴 글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 한 시대착오다.
단순하게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직 뛰어난 통찰을 가진 자만이 단순한 삶을 살 수 있다. 마음이 거울처럼 맑은 자만이 단순한 삶을 살 수 있다. 어떻게 마음을 맑게 할 것인가? 논리로 맑게 한다. 논리학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논리학은 단순함을 위한 학문이다.
냉동실에 있는 음식을 모조리 쓰레기 봉투에 집어넣었다. 엄마는 버려질 음식을 계속 보낸다. 아무리 말 해도 엄마는 고향에서 요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그게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증표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딸이 원하는 건 음식이 아니라 돈이었다. 손맛보다는 돈맛이 좋다.
가끔 난 너를 꾼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나 몰래 흘려진 눈물을 닦는다. 너는 왜 나에게 몇 개의 눈물일까.
권영성 교수의 헌법학원론을 읽고 있는데 법이 강자의 이익이라는 내 생각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사회계약론은 물론이고 헌법도 이미 존재하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법을 무시하라는 게 아니다. 단지 현행 헌법은 ‘현재의 헌법’이라는 것이지 ‘미래의 헌법’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현재의 헌법’을 지켜야 한다.
무식한 사람을 피해야 한다. 가능하면 말도 섞지 않아야 한다. 나는 나의 관계다. 내가 아무리 영향을 받지 않으려 해도 나는 나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아니, 다시 말하지만 나의 관계가 곧 나다. 따라서 누구와 관계를 맺을지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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