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ck you startup Background

전 당신의 스타트업이 유니콘이라 믿습니다

Fuck you Startup

Prologue – 이건 당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제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스타트업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과대평가 되어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뭐, 스타트업만 그런 것은 아니죠. 어쨌거나 저는 당신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라는 말 따위를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당신이 만든 앱(APP)이 무슨 알지도 못하는 랭킹에서 1위를 했다면서, 마치 무언가를 이룬 것처럼 페이스북에 과장하여 포스팅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전혀 당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위워크에 사무실을 차린 한 스타트업에서 2년 정도 일했습니다. 그 덕분에 2년 동안 아주 빈곤한 삶을 살았습니다. 위워크 냉장고에 있는 서울우유를 하루에 2L씩 쳐마셨다는 것만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그 2년 동안 저는 아주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가령 친구들을 만나면 돈이 많은 척을 하거나, 내가 회사에서 아주 바쁘게 <다양한> 업무를 배우고 있다고 말하거나, 또 파이썬과 자바스크립트 등을 들먹이면서 개발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한다던가 하는 것 말이죠. 당신은 이런 거짓말을 하지 않지요? 네! 그래서 제가 말한겁니다. 이건 당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구요.

제가 다녔던 회사는 미디어 커머스 회사입니다. 미디어 커머스가 무슨 말이냐구요? 저도 모릅니다. 페이스북에서 <먹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초콜릿 맛 김치> 같은 걸 파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마케터로 이 상품을 판매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많이 팔렸나구요? 당연하죠! 멍청한 10대 썅년들이 페이스북에 드글드글 합니다. 제가 할 일은 예쁘장한 여자를 섭외해서 <먹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초콜릿 맛 김치> 를 먹인 다음에, 이렇게 말하는 영상만 찍으면 됩니다. “와, 먹기만해도 살 빠지는 거 실화임?” 그 순간 10대 여자들은 이 상품에 환장을 해서 엄마 지갑에서 돈을 냅다 꺼내버립니다. 원디렉션 같은 보이그룹을 좋아하는 게 10대 여자 아니겠습니까. 조금 더 진화되고 돈 많은 침팬지라고 할 수 있지요.

당신은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는> 그런 일을 하고 계신 분이 아닙니까? 느릿느릿한 대기업들이 할 수 없는 아주 창의적인 업무를 하는 분 아니십니까?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당신은 대한민국의 스티브 잡스 혹은 일론 머스크가 되실 분이 아닙니까? 아! 그러시지요. 정말로 그러시지요! 그래서 제가 이 이야기는 당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저는 당신과 다릅니다. 저는 항상 거짓말을 합니다. 제가 경제를 알고 있는 것처럼, 스타트업 생태계를 알고 있는 것처럼 페이스북에 포스팅 하느라 바쁩니다. 오늘도 새벽 늦게 까지 야근을 하며 <유니콘>을 만드시는 당신은 아마 저를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너그럽게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혹여나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스타트업에 달려있으니까요.> 저의 하찮은 글에 시간낭비 하지 않으셔야지요.

Chapter 1 – 창의적 인재

내가 정치적 좌파라는 것을 일단 밝히는 것이 좋겠다. 나의 전공은 문화인류학이며 대학교 4년 내내 미국의 제국주의적 악랄함과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공부했다. 아, 젠더학을 공부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을 들였다는 것 역시 말할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내가 공산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난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난 단지 북유럽식 사회주의(특히 스웨덴)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스웨덴에 대해서라면 난 꽤나 공부를 한 편이다. 즉, 난 이케아를 알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내 자신이 꽤나 똑똑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영어는 곧잘 한다. 난 때때로 페이스북 담벼락에 <영어>로 글을 작성한다. 내 페이스북 친구 중 99%가 한국인이지만 난 가끔 알리고 싶다. <내가 영어 작문을 좀 잘한다는 것을.> 또한, 난 여러 지식인들의 저작을 많이 읽어보았다. DBpia가 아닌 JSTOR에서 논문을 찾아 읽는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한국 학회에서 나온 논문은 쓰레기다. 그것이 내가 JSTOR를 이용하는 이유다. 최근에 나는 슬라보예 지젝의 저서를 탐독했으며, 조던 피터슨의 저작도 읽어보았다. 그는 꽤나 우파적이고 파쇼적이며, 가부장적이지만 맞는 말도 가끔한다. 난 조던 피터슨을 판단할 만한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난 취업에 실패한다. 말하자면 난 원서를 30군데 정도 썼고 그 어떤 곳에서도 날 받아주지 않는다. 도대체 이게 무슨 경우인가? 나의 뿌리 깊은 대기업 증오는 점점 커진다. 물론 내가 대학에 다니면서 <삼성의 횡포>에 대해 여러 가지 보고서를 작성했음은 인정한다. 그들이 악랄하고 돈밖에 모르며 중소기업을 탄압하여 돈을 착취하는 악덕 대기업임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난 삼성에 지원했다. <어쩌겠는가? 시장이 그러한 걸.> 앞서 말했듯이 난 골수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난 <온건한 사회주의적 공유 경제>를 지향한다. 즉, 시장원리를 이해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기업 공채란 창의성을 보지 않고 기계적인 인간을 뽑는 과정이란 것을 알았지만 이 정도인줄은 몰랐다. 나의 친구들은 대기업 취직에 성공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떨어진 이유는 내가 <창의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거대 조직에서는 나같은 <창의적 인재>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스타트업에 지원했고 아주 간단하게 합격했다. <난 꿈을 좇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한 인재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놈들이 좀비라면 나는 <도전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다. 그것이 내가 스타트업에 취업한 이유이지, 대기업에 못들어가서는 절대 아님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난 강남 위워크 11층으로 출근한다. 15층 위워크 관리대에서 나를 등록하고 열쇠를 받는다.(회사 직원이 아니면 이 건물로 들어올 수 없다.) 위워크의 냉장고는 우유와 간식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곳이 한국의 실리콘벨리다.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들을 만나면 꼭 이야기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난 거대한 톱니바퀴의 일부가 아니야!”라고. 내가 맡은 일이 무엇이냐고? 앞서 말했지만 난 <창의적> 인재다. 코딩 같은 기계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 난 마케터다.

Chapter 2 – 유니콘이 되는 방법

“폴 크루그먼이 애플에게 보내는 조언? 이 양반 노벨상을 타더니 아주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뉴욕 타임즈의 지면 하나를 차지하더니 마치 뉴욕 부동산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단 말일세. 내가 장담하건대 도널드 트럼프가 폴 크루그먼보다 경제를 더 잘 알걸세.” – 미셸 골드버그

나는 아침에 The Economist를 한 부 가지고 출근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라면 환장을 한다. The Economist는 얇지만 뉴욕 타임즈와 월스트리트 저널보다도 더 어렵고 고급스러운 영어를 사용하여 기사를 작성한다. 사실, 나도 전혀 읽을 수가 없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저 사람들에게 내가 이것을 <읽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그만이다. 영어를 못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우러러 본다. 나는 가끔씩 한국어 대신 영어 단어를 써주기도 한다. 가령, ‘마켓 벨루에이션(Market Valuation)’이 상당히 ‘언더에스티메이티드(Underestimated)’되었네요 라는 식으로.

출근을 한 뒤 나는 모닝 커피 한 잔을 내린다. 강남역 위워크 15층에서 난 강남대로를 내려다본다. 난 마치 내가 이 건물의 주인이 된 것만 같다. 나는 이미 한국의 셰릴 샌드버그가 된 것만 같다. ‘웰컴 투 스타트업 월드…’ 난 스스로에게 나지막하게 외치고는 사무실로 내려간다. 사무실의 내 책상 위에 The Economist 표지가 보이도록 내버려둔다. 직원들은 내 책상을 보고서 내가 얼마나 <어려운> 시사 잡지를 읽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기필코 알아야 한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우선 내가 취직한 스타트업이 어떤 회사인지 말해줘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미디어 커머스 회사이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기업>을 지향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더 따뜻한 세상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돈만 밝히는 대기업 같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정부는 이런 우리에게 매우 호의적이다. 우리 대표님은 창업 경진 대회에서 상금으로 1억을 타셨다. 아이디어가 뭐냐고?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정부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취업이 안되는 청년들을 위해 ‘창업’을 하라고 독려하고 있는 중이다. 창업을 한다고만 하면 일단 돈을 주는 것이 정부다. 특히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모두들 굿모닝!” 대표님이 런닝화를 신고 들어오신다. 그는 런닝 크루에 소속되어 있다.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런닝이나 좆같은 명상 등이 필수다. 스티브 잡스가 젊은 시절 인도의 한 구루를 만나기 위해 기꺼이 비행기를 타고 인도로 날아갔다는 걸 모르는가? 스티브 잡스는 “Think Different”라고 말했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스티브 잡스>처럼 생각하려고 한다. “Think Alike” 라는 구호가 한국에는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어쨌든 대표님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자리에 앉으신다. 그리고 <직장 리뷰> 앱을 열고 퇴사한 직원들이 남긴 리뷰를 하나하나 지워나간다. 몇 몇 퇴사자들이 우리 회사에 대해 안 좋은 리뷰를 그 앱에 남겼다. 별점은 1점. 내용은 “1점도 아까운 회사에요. 절대 비추”

“영주씨!” 대표님이 나를 부른다. “첫번째 임무를 줄게요.” 드디어 나의 창의성이 발휘될 순간이 온 것인가… ” <직장리뷰>에 회사 리뷰 좀 남겨줘요. 별점 5개로 하고, 다른 사람들이 쓴 것처럼 해서 한 10개 정도? 아주 중요한 업무에요!” 나의 일과는 그렇게 시작된다. 마케터로서 나는 대표님께 나의 <창의성>을 보여줄 기회를 얻은 것이다. 명성이 전부인 스타트업 세계에서 별점 조작인 필수적이면서도 아주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Chapter 3 – 나 자신을 믿어라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에요. 그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정말 지독한 현실주의자요. 오히려 워즈니악이 이상주의자였죠. 하지만 잡스는 역설적으로 지독한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에 동시에 이상주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21세기에 플라톤이 거꾸로 부활한 게 스티브 잡스입니다.” – 팀 쿡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6개월, 내가 주로 하는 일은 SNS 스타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신제품을 출시했는데요, 제품을 보내드릴테니 리뷰를 작성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 한 200명 정도에게 이 문장을 보낸다. 그 중에서 30, 40명이 답장을 보내오고 난 그들에게 상품을 보내준다. 또한 인스타그램 스타들과 페북 스타들을 섭외해서 몇 가지 동영상 광고들을 찍기도 한다. 그녀들의 뇌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풍만한 가슴만큼은(특히 가슴골이 보이는 옷을 입혔을 때) 너무나도 귀중한 가치가 있다. 이것이 내가 마케터로서 하는 일이다. 물론, 난 구글 애널리틱스와 구글 애드워즈, 애드센스 그리고 페이스북 광고까지 공부했다. 난 그것들에 능통하지만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모아야 할 지는 전혀 모른다.

난 사실 이런 SNS스타들을 경멸한다. 내가 도대체 왜 이들한테 ‘부탁하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야하는가? 학창시절에 공부도 잘 못하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관종짓밖에 없는 SNS 스타들이 나보다 잘나간다는 사실을 정말 참을 수가 없다. 난 똑똑하다. 난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2번이나 해보았단 말이다! 그리고 내 월급은 140만원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현대사회에서 연봉을 물어보는 것은 엄청난 실례다. 나는 페이스북 담벼락을 통해 돈이 많은 척을 한다. 그리고 마케터로서 매우 뛰어난 척을 한다. 데이터 사이언스, 그로스 해킹, 웹크롤링에 관한 기사를 공유하면서 뉴스에서 주워들은 지식을 마치 <내가 스스로> 생각한 것처럼 말한다. 사람들은 내가 대단한 마케터라며 댓글을 달아준다. 그리고 아무도 내 Linkedin 계정으로 연락 해오지 않는다.

오늘은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매우 껄끄럽다. 친구들만이 “그래서 얼마나 벌어?”라는 질문을 내게 할 수 있다. 나는 그들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위워크(Wework)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란 이야기는 다 꺼낸다.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거야!” “엘론 머스크는 이런 말을 했는데…” “요즘 실리콘밸리의 트렌드는 이거야…” 등 아는 이야기란 이야기는 모조리 토해낸다. 그래도 내 친구 씨발년들은 내게 물어본다. “그래서 얼마나 버는데?” “지금은 얼마 되지 않지만 대표님이 이번 프로젝트가 잘되면 나한테 지분을 조금 주신다고 해. 내가 젊음을 투자한만큼 충분히 <엑싯>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엑싯>이라는 전문용어가 나오자 씨발년들은 입을 다문다. 다행이다.

주말에 나는 <숨고>를 통해 페이스북 광고에 대한 강의를 한다. 절.대.로 내가 돈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난 단지 <나의 커리어>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 뿐이다. 이제 막 자영업을 시작한 아저씨들이 내게 연락을 해온다. 난 이들에게 페이스북 광고하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서비스로 구글 애널리틱스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알려준다. 아저씨들은 신세계를 만난 표정을 짓는다. 내 강의를 듣고 사정이라도 하는 걸까? “한국에서는 이런 정보를 찾기 참 어렵죠. 저도 공부하느라 참 힘들었어요. <원서>를 봐야했거든요…” 난 넌지시 이 말을 아저씨들에게 던진다. <원서>라는 말에 아저씨들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내 가슴골을 쳐다본다. 그들은 내 수업에 만족했다.

Chapter 4 – 새로운 도전

“진실과 거짓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라 생각하다니 자네는 아직도 멀었구만. 아무도 거짓이라고 말하지 않는 거짓말들. 그것의 이름이 진실이라네.” – 셰익스피어

스타트업에 있은 지 어느새 1년이 다 되어간다. 나는 이제 비즈니스에 있어서 도사가 된 것만 같다. 창업을 하게 되면 난 손쉽게 포브스지에서 선정하는 Under 30의 멤버에 뽑힐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위워크에서 일하면서 보니 다른 스타트업들은 정말 보잘 것 없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디자인, 마케팅의 수준, 광고의 창의성 등을 보고 있으면 정말 한숨만 나온다. 나는 페이스북에서 이 보잘 것 없는 회사들을 가차없이 비판한다. “투자만 받으면 뭐합니까. 이 회사는 실체가 없어요.” 라고 글을 쓰면 수 많은 사람들이 내 의견에 동의해준다. ‘역시 난 비저너리야(Visionary)…’ 난 한층 더 내 자신이 사랑스럽다.

스타트업 네트워크 모임에 나갔다. 네트워킹이야말로 스타트업의 필수조건이다. 그 곳에 <실제로 창업을 해 본>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긴 하다. 사실 나도 아직 <경험을 쌓는 중이다.> 창업을 하려면 못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난 지금 단지 <경험을 조금 더 쌓고 싶다.> 난 넷플릭스 조직문화에 대한 슬라이드를 읽었고,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연설 영상을 보았으며, Creativity, Inc라는 책도 읽었다. 그러니까 난 창업자로서의 자질은 충분한 것이다.

“삼성은 곧 망할거에요. 내가 미국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받았는데 조직이론으로 최우수 졸업을 했어요. 프린스턴에는 정말 많은 학생들이 있는데 내가 최우수 졸업을 한 것이죠. 삼섬은 망할 겁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늘상 하셨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삼성은 관료제적이고 몸통이 거대해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줄 모른다.> TV에서 이재용을 봤는데 나보다 멍청하다는 걸 확신했다. 에휴… <인문학> 수업이라도 한 번 들어봤으려나 하는 걱정이 든다. 우리 교수님은 문화인류학 박사지만 수업시간에는 정치와 경제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삼성과 현대는 오로지 박정희의 독재를 도왔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삼성과는 반대로 <모든 것을 다른 관점으로 보려 한다.> 가끔 중소기업 사장들이 세미나에서 창의적인 것도 좋지만 먼저 기초를 탄탄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꼰대들 소리는 들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난 돈도 없다. 그래서 난 잠시 스타트업을 그만두고 공무원 9급 시험을 준비하려 한다. 내가 창업을 못해서가 아니다. 난 다만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싶을 뿐이다. 난 토익도 950점이다. 난 잠시 스타트업을 떠난다. 그 전에 페이스북을 열고 글을 쓴다.

“난 정말 다양한 삶을 산 것 같다. <남들이 도전해보지 못한> 스타트업에서 1년 동안 난 정말 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난 이제 새로운 도전을 향해 떠난다.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두려움을 느끼더라도 앞으로 나가는 인간만이 위대해질 수 있다. 삶은 여행이라던가. <신은 내게 너무나도 많은 여행을 떠나라고 하신다.> 나는 “네”라고 말하며 도전을 받아들인다.”

“역시 멋져요! 다음 도전을 또 기대합니다! 정말 멋진 인생을 사시네요.” 라는 댓글이 달린다. 나는 한 층 더 내 자신이 사랑스럽다.

김세라

* 이 글을 읽고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메일 구독을 하고 말았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이었으며,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내가 아주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걸 즉각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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