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folio - Novel - Democracy - Background

개, 돼지들의 민주주의

그 누가 자유를 원하는가?

Chapter 1 – 선명한 왕국

내가 연세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한 행동은 고등학교 때 맺은 인연을 모조리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전라남도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 신안군.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나만 유일하게 서울로 대학을 – 그것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 왔다. 이를테면 나는 10대 시절을 성공적으로 보낸셈인 것이다. 하지만 신안군에 남아야하는, 기껏해야 광주 정도로 대학을 간 친구들은 달랐다. 그들은 10대 시절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가서도 의미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난 그들과 대화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난 내 앞에 있는 이 피조물들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못하고 <아는 형> 이야기 – 내가 아는 형이 있는데, 그 형이 페이스북 활동으로 돈을 많이 벌었대! 차도 BMW여서 나도 타봤는데… 식의 이야기들 – 만 하는 이들.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이러한 존재들은 죽는 것이 사회에 이로웠다. 난 이런 종류의 인간들을 위한 홀로코스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과 연락을 끊는 것은 매우 간단했다. 먼저 연락을 하지 않고, 내게 오는 연락은 무시했다. 그러면 이들은 나에 대한 열등감과 한심하기 짝이 없는 스스로의 인생을 생각하면서 약간의 분노를 삼킨 뒤 다시는 연락해오지 않았다. 신안군에 남아있는 또 다른 친구에게 ‘그 애 서울 가더니 변했더라.’ 라는 말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사실 이들과 연락을 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연세대학교에 <정시>로 들어왔다고 약간의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난 기초소득 수급자를 위한 <한 마음 전형>으로 이 곳에 입학했고, 그 덕에 실제로 연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이 아님에도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말하자면 난 <진정한 연세인>으로 학내 구성원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학부가 연세대학교가 아닌 대학원생들, 편입생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연세대 원주 캠퍼스에 다니는 이들은 <진정한 연세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오히려 약간의 멸시와 비웃음을 받는다. 그리고 이건 <한 마음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만이 내가 <한 마음 전형>으로 이 곳에 왔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차라리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이 속 편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학교 생활은 나름 재미가 있었지만 공부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모든 문과대학 학생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경제학 혹은 경영학을 이중전공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솔직히 나는 국문과에 원해서 입학한 것도 아니었고, 문과대학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지식들이 나를 실업자로 만드는데에만 쓸모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는 나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과대학 학생들이 느끼고 있었고 그랬기에 경제학, 경영학 복수전공을 하기 위해서는 꽤나 열심히 공부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내 인생도 흘러갔다. 나는 과외를 했고 기숙사에 살았다. 이 두 가지 사실 모두 내게 고역이었다. 우선 난 10대들을 싫어한다. 10대 특유의 흘러넘치는 자기애를 볼 때면 젓가락으로 눈 알을 뽑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찾아낸 노래를 ‘자기만 알고 있는 노래’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음악적 취향에 감탄할 때마다 난 그들의 귀를 가위로 자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뿐만 아니라 <하입비스트>를 쳐 보면서 자기가 옷을 꽤나 입는다는 착각에 빠진 모습 역시 나를 구역질 나게 했다. 10대들에게는 아주 혹독한 가혹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얼마나 낮은가를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기숙사는 과외보다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은 과학고를 조기졸업한 수재로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 특유의 여유로움과 붙임성이 있었다. 괴로운 건 학교 정문에서부터 기숙사까지 걸어서 30분이 넘게 걸린다는 점이었다. 물론 마을버스 3번을 탈 수도 있었지만 난 버스비를 아끼면서 살아야하는 신세였다. 나의 부모는 가난뱅이들이기 때문이다.

Chapter 2 – 진보의 의미

여느 대학생들처럼 나 역시 좌파적 사상을 미약하게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난 더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즉, 나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혹은 더 나아가 아나키스트가 되는 정도까지 내 사상을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사실 좌파가 된다는 것은 꽤나 편리한 일이었다. 부조리는 이 세상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바, 나는 <인권>이니 <정의>니 <평등>이니 하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세상의 부조리를 공격함으로써 정의로운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인권, 정의, 평등을 들먹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그 단어들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학생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을 보며 좌파적 사고와 결별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찌질했고 특유의 짜증을 가지고 있었으며, 문학이나 음악 등의 예술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해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가난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난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고, 그것은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청년 우파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를 만난 것은 좌파적 사고를 버리고 난 2달 뒤 쯤이었다. 함께 술을 마시곤 했던 학과 친구 한 명이 술자리에 그를 데려온 것이었다. 그는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고 시장에 대한 절대적 신뢰, 부자에 대한 호의 그리고 좌파에 대한 조롱 섞인 경멸을 드러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은근하게 자신의 부를 자랑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저번 달 카드 값이 얼마 나왔다느니, 맥북 신형이 나오자마자 <궁금해서> 사봤다느니 하는 식으로 은근히 돈 자랑을 해댔다.

나는 그와 많은 점에서 생각이 달랐지만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우선 그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라는 점이 – 즉, 나보다 더 높은 입결을 가진 학과에 다닌다는 점이 –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또한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돈이 많아보인다는 점 역시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와 일정 정도의 친분을 유지했고 그를 통해서 우파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 곳은 좌파의 세계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우파라는 사람들의 인간 판단 척도는 오로지 돈이었으며, 그 외에 인간적 가치는 전혀 따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도덕이나 윤리 혹은 더 나아가 삶이라는 것에 대한 질문은 시장법칙보다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었고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가치조차 없는 것들이었다. 한 마디로 우파라는 작자들은 좌파라는 사람들처럼 여러 면에서 미쳐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청년 우파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그가 페이스북에서 학력을 삭제했다. 알고보니 그는 안암에 있는 고려대학교가 아니라 조치원에 있는 고려대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밝혀졌고, 그 둘은 아예 다른 대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고려대학교에 다닌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우파의 세계에서 그는 추방되었다. 철저한 능력중심주의 사고를 가지고 있던 청년 우파들은 그가 조려대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그를 깔보기 시작했고, 그가 실제로 돈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자 나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났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는 한 순간에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여자친구는 내가 비겁하다고 했다. 애초에 돈과 학력으로 사람을 지레 짐작하는 나의 습성을 그녀는 비판했다. 그것은 옳은 지적이었다. 하지만 난 연세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지방의 어느 대학에 다니고 있다. 내가 그녀의 조언을 들어야 할 이유를 난 찾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의 집안도 내 집안 못지 않게 가난했다. 방학마다 해외에 제 집 드나들듯이 다니는 연세대학교 학생들을 보면서 난 고등학생 때부터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했다. 난 집안이 빵빵한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방학 때 유럽이나 미국으로 여행을 다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내게 비겁하다고 말했고 언제나처럼 그녀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가난은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몰랐다. 애초에 부자인 사람과 인연을 맺어야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고 연세대학교에는 부자인 여자들이 꽤 많다는 것도 그녀는 몰랐다.

Chapter 3 – 멋진 신세계

나는 두 명의 여자를 더 사귀었다. 그녀들 모두 돈에 대한 걱정은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삶을 살아온 인간들이었다. 즉, 그녀들은 가난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첫번째 여자친구는 굉장히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그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사랑받는 것과 주목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계집이었다. 말하자면 같이 밥을 먹으러 갈 때 정수기에서 물을 떠오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는 것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또한 이 개년은 365mc에 가서 이상한 주사들 – 예를 들면 종아리를 얇게 만들어준다는 고가의 주사들 – 을 몸에 주입시키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꼭 동행해주기를 요구했고 그것에 대해 일말의 고마움도 느끼지 않았다.

예쁜 년들. 여기서 예쁜 년들이란 성형을 하지 않고서도 예쁜 여자들을 말한다. 성형을 해서 예뻐진 여자들은 원래부터 예쁜 여자들보다 훨씬 더 악독한 성격을 발달시키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의하지 않겠다. 선천적으로 예쁜 여자라는 것은 조선시대로 따지면 양반의 피를 얻고 태어난 것과 똑같다. 이 여자들은 오로지 우연에 의하여 획득된 아름다움을 무기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든다. 남자들은 단 한 번이라도 그녀의 가슴을 만져보기 위해 돈과 시간과 감정을 쓰고, 예쁜 여자들은 이런 남자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아주 편안한 삶을 영위한다. 또한 예쁜 여자들은 같은 여자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 됨으로써 아주 쉽게 권력을 획득한다. 학창시절에 왕따 시키는 년들의 얼굴을 보라. 반드시 예쁜 얼굴의 소유자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디시인사이드에 올렸고 꽤나 호의적인 반응들이 돌아왔다. 이를 계기로 나는 디시인사이드에 꽤나 많은 글을 올리게 되었고 이름하여 <네임드 계정>이 되었다. 두 번째 여자친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외국에서 온 아이들이 다수 참가하는 연세대학교 UIC 수업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한국계 미국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인의 피와 미국이라는 환경이 섞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국인들이 동양인들에게 쓰는 인종차별적 발언이 꽤나 많은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정말 눈이 옆으로 찢어져 있었으며 한국에서 태어난 여자들보다 눈의 크기가 훨씬 작았다. 말하자면 그녀는 수학을 존나게 잘하고 운전은 존나게 못하게 생겨먹었다. 그래도 난 그녀를 사랑했다. 존경할만한 구석이 많은 여자였으니까.

디시인사이드에서 내 인기는 점점 커져갔고 상류층의 삶을 살고자하는 나의 욕망도 점점 커져갔다. 나는 나의 세계관을 디시인사이드에 퍼뜨리려고 노력했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었다. 유명해지는 것이야말로 돈을 가장 빠르고 쉽게 버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인이 되면 스타트업 아니,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연세대학교 학생증을 디시인사이드에 인증했고, 나의 추종자를 만들기 위해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철학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아주 제한된 자유만이 주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교촌치킨을 먹을까, 비비큐치킨을 먹을까 하는 정도의 자유가 인간이 누릴만한 자유이다. 보다 근본적 자유, 즉 자기 의지를 세상에 관철시키고자 하는 자유는 아주 뛰어난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주어져야 한다. 나는 기억한다. 어느 고위 공직자가 대중은 개, 돼지와 같다고 한 발언에 분노했던 국민들을. 그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진실을 마주하면 가장 화를 내는 법이니까. 엘리트가 아닌 인간들은 조종당하며 살아야한다. 비참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대중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어야하고, 말도 안되는 부를 가진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대중들이 그들의 삶을 선망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간들은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또 부자가 되기 위해 개처럼 일할 것이다. 사회의 안정은 그렇게 찾아온다. 난 <멋진 신세계>가 결코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 즉 말 그대로 유토피아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놀란 것은 나의 이런 엘리트주의 철학에 대해 디시인사이드 회원들이 강한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루종일 컴퓨터만 하는 고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나의 학벌과 철학자, 소설가를 들먹이는 화술에 넘어가서 나를 일종의 롤모델로 삼고자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나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면 고졸들은 ‘너는 <노력>해서 연세대 들어가봤냐?’ 라는 댓글들로 내 비판자들을 아주 묵사발로 만들어버렸다. 난 다시 한 번 대중은 개 돼지가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쩌면 난 정말로 한국에서 유명인사가 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Chapter 4 – 개, 돼지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예쁘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인간 계급 피라미드 꼭대기에 위치한 이 년들은 유튜브 구독자도 매우 쉽게 모았다. 가령 <가슴이 파인 옷>을 입고 브이로그를 찍으면서 “오늘은 <신발>에 포인트를 주는 코디를 해보았어요!” 라는 지랄만 떨어대도 구독자가 팍팍 오르는 것이었다. 인지부조화가 이들의 주 콘텐츠라고 할 수 있었다. 난 그 어떤 노력을 해도 구독자가 오르지 않았다. 디시 인사이드 네임드인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몇몇 애들이 <형, 나가 뒤지세요>라는 댓글만 달 뿐이었다. 나는 <미친새끼야, 내가 왜 네 형이냐? 형은 네 엄마한테가서 찾아라, 저능아 새끼야>라는 댓글로 응수하려다 그만두었다. 구독자 한 명 한 명이 너무나도 소중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에게 별 거지같은 영상들을 추천해주곤 했다. 그 중 가장 어이없는 영상들은 자신들이 <도전>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유튜버들이었다. 그들은 크게 직장인들과 대학생들로 나눌 수 있었다. 직장인들은 자신들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유튜브를 시작하는 걸 <도전>이라고 불렀다. 도대체 무엇이 도전이라는 걸까? 나에게는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직장을 꼬박꼬박 다니는 것 – 아침에 일어나서 만원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간 후, 꼴보기 싫은 얼굴 앞에서 억지 웃음을 보이며 쥐꼬리만한 월급을 타는 일- 보다 훨씬 쉬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또한 유튜브를 시작하는 것은 단지 구글 계정 하나만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즉, 직장을 그만두는 것과 유튜브를 시작하는 것 중 그 어떤 것도 <도전>이라 부를만한 것이 없었다.

대학생들은 더 어이가 없었다. 이들은 그냥 유튜브를 하는 것 자체를 <도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대개 서울 상위권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이 지랄을 떨어댔는데, 예를 들면 “저는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지금은 ‘도전하는 삶을 살아보려’ 유튜브를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해대는 것이었다. 이들은 마치 자신들에게 엄청나게 위대한 장밋빛 미래가 약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유튜브를 안했으면 이들은 뭘 했을까? 대통령이라도 될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면 이재용이 죽으면 삼성을 물려받을 사람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도전>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못알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난 국어를 못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유튜브 시장은 나의 개인적 판단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즉, <도전>을 들먹이는 이 유튜버들이 꽤 괜찮게 구독자들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바로 시장법칙 앞에 무릎을 꿇었고 이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꿈을 찾는 삶>, <나 자신을 찾는 삶> 같은 말들을 들먹이기 시작했고 같잖은 인생 철학들을- 예를 들면 이런 친구는 피해라 같은 것들 – 설파하기 시작했다. 또한 나는 나의 학벌을 알리기 위해 약간의 애를 썼다. 내 입으로 직접 연세대를 다닌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재수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서울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브이로그>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찍었다. 그 영상에서 나는 신촌, 연세대 정문, 담쟁이 덩굴로 둘러쌓여있는 연세대 건물을 보여주었다. 바로 댓글 창에 “연세대 다니세요?” 라는 물음이 달렸고 나는 마치 내가 그 사실을 알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듯이 “네 ^^;;”라고 대답해주었다.

내 유튜브 채널은 점점 성장하기 시작했다. 내 학벌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내가 그 어떤 개소리를 해도 ‘일리 있다.’라는 말을 해댔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어서 항상 남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댓글 창에는 “이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어떤 깊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입을 벌려서 물어본 사안에 대해 개소리를 해댔다. 사람들은 “오 공감!”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고, 심지어 “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거였는데 이렇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난 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엿같은 사람들로 채워지는지 알 것 같았고 좌절감과 동시에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Chapter 5 – ‘인간’이라 불리는 존재

개, 돼지를 사육할 때 유념 해야 할 점은 그들이 개, 돼지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하나의 개별자, 즉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가축들을 지배하기 어려워진다. 국민들이 일종의 가축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대중들이 개, 돼지와 다름없다는 것을 아주 냉철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성공했다. 나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상류층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는 내가 구독자란 존재들이 개 돼지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아주 철저하게 기억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주었다. 페미니스트들을 아주 시원하게 욕해주었고,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말해주었으며, 골수 우파의 냄새가 나지 않도록 가끔씩 자유한국당도 욕해주었다. 구독자들은 나를 ‘냉철하다’라고 부르기도 했고 중도보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문재인을 욕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난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한 터였다. 보수우파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인간들은 문재인만 욕해준다면 내가 그 어떤 소리를 지껄여도 나를 지지해주었고, 라이브 방송에서 꽤나 높은 액수의 돈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돈을 번다는 건 정말 너무 쉬운 일이었다.

엠창인생. 나는 유튜브에서 댓글로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단어를 생각했다. 나는 엠창인생이라는 단어는 너무 심한 욕이라고, 이들을 묘사할 좀 더 고상한 단어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단어보다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이들의 인생을 설명하는 단어는 없었다.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있는 것들 중 버릴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다.> 그의 말은 옳았다. 엠창인생이라는 단어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단어였던 것이다. 그러면 유튜브에서 댓글로 문재인이 빨갱이인가 대해 토론하면서 싸우는 이들의 존재 의미는? 그들은 내 노예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한다. 내 채널에 구독을 누르고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로부터 날 지켜주며, 무엇보다 나를 부자로 만들기 위해 그들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물었다. 정치성향이 어떻게 되세요? <난 그 어떤 정치성향도 가질 수 있다. 너희들을 지배할 수 있다면.> 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난 유튜브 광고 수입만으로 한 달에 4천만원을 벌고 있었다. 나는 벤츠 E-Class를 구매했고 그걸 유튜브 영상을 통해 가끔 보여주었다. 개, 돼지들은 나를 더욱 더 선망하기 시작했다. 특히 남자들이 그랬다. 수컷들이란 돈 많은 다른 수컷 앞에서 아주 손바닥을 살살 빌면서 기어가기 바쁘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돈만 많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누군든 날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반론에 시달려야했다. “나는 <노력>해서 자수성가 했다. 그래서 이렇게 벤츠도 사고 <기부>도 하며, 내가 원하는 집도 사서 살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나를 비판 하느라고 당신 스스로의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정말 한심한 인생이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런 내 주장에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다시는 댓글을 달지 않았고, 내 추종자들은 그 사람 댓글에 온갖 욕이란 욕은 다 써 갈겼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너무 쉽게만 느껴졌다.

나는 10대들과 20대 초반의 멍청이들을 포섭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들은 ‘돈’이라는 아주 단순한 물질에 경도되어, 돈 많은 사람은 무조건 선망하고 보는 병신들이었다. 자신들은 피씨방에서 롤만 하고, 여느 찌질한 남자들처럼 몰려다니며, 엄마한테 성질을 내고 돈 한 푼도 못 버는 인생을 살지만 부자인 나를 선망하고 심지어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켜주기까지 하는 이들. 나는 왜 마오쩌둥이 홍위병을 기획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정말 노예로 부리기 딱이었다. 나는 나를 비겁하다고 불렀던 첫 여자친구를 떠올렸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비겁하다고 부를 것이며, 내가 나의 재력을 아무리 자랑해도 다시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난 여전히 그녀가 옳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그녀와 같은 인간, 그러니까 ‘인간’이라고 불려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이제 거의 없기 때문이다.

Epilogue – 민주주의

내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유튜브에서 잘나가고 있으며 심지어 내 의견이 이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나의 적들은 절대로 나를 망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난 선동의 귀재이다. 하지만 내 이미지는 선동과는 아주 거리가 먼, 오히려 점잖고 냉철하다고까지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 대중들은 나를 신뢰하고, 다수결의 원칙을 견지하는 민주주의라는 체제는 이 대중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나의 입지를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확신하건대, 나는 앞으로도 여전히 잘나갈 것이다. 내가 옳은 말을 해서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누가 그걸 안단 말인가? 안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걸 지적해준단 말인가?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이? 그런데 지식인이란 누구를 말하는 걸까? 어떻게 해서든 장관 한 번 해보겠다고 정치인들에게 줄을 갖다대는 교수들이? 이미 답을 정해놓고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자기 고집을 꺽지 않으려는 언론인들이? 그것도 아니라면 정치인에게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자기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페이스북에 글을 써대는 페이스북 글쟁이들이? 말하자면 대한민국에 나의 선동을 막을 사람은 없으며, 심지어 나는 대중들이 선동을 원하다고 느낀다.

내가 이토록 유명해졌음에도 나의 첫 여자친구는 연락 한 번 오지 않는다. 전화나 문자는 물론이고 인스타그램 메시지도, 페이스북 메시지도 심지어 메일도 보내지 않는다. 난 그녀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 부유한 삶은 살지 않겠지만 – 아니 오히려 퍽퍽한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 아침이면 그 아름답고 긍정적인 미소를 보이며 오늘 하루도 화이팅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외쳐주겠지.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낄 것이고, 이 어둡고 비침한 세상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내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려고 하겠지. 말하지 않아야 할 때 말하지 않고 말해야 할 때 말하며, 그 논쟁의 과정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절대로 잃지 않겠지. 나는, 나는 왠지 모르게 그런 확신이 들었고 그건 그리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언젠가 한 때 사랑했던 우리는 반대편이 되어, 아니 어쩌면 서로 적이 되어 만날 수도 있어. 그 때 일말의 주저함 없이 나를 죽여줘. 난 정말 기쁘게 그 죽음을 받아들일게. 난 그녀를 생각하며, 아무도 못 들을 정도의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 김세라

* 이 글을 읽고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메일 구독을 하고 말았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이었으며,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내가 아주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걸 즉각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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