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엘리트 10 : 나만의 편지

그의 음악이 들린다. 그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길로 들어갔다. 매일 새벽마다 그는 동대문에서 옷을 나르는 일을 했다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그 돈으로 꿈을 향해 나아간 거야. 내가 서울대학교라는 간판에 안주할 때,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 집중하지 않고 나를 꾸며내려 노력할 때, 그때 그는 자기를 마주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네. 아니, 그는 두려워도 계속 자신을 마주했네. 진실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일까. 나는 정말 무엇일까. 붙일 수 없는 편지만 쓰는 나는.

.

나는 사랑을 말하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문득문득 옆을 돌아봐. 문득문득 뒤를 돌아봐. 너는 없어. 나는 안도하지. 다행이야, 네가 있었다면 나는 글을 계속 쓸 수 없었을 테니까.

내가 뭐라고 쓸 것 같아? 사랑에 대한 이런저런 감상들을 지껄여.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얼마나 마음 따뜻한 사람인지 나타내는 문구를 덧붙이지. 내가 사랑을 향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온 세상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해. 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은근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야.

“난 여러분보다 사랑에 더 가까이 있어요.”

나는 사랑에 대한 내 실패담을 늘어놓는 척 하면서 교묘하게 나의 우월감을 숨겨놓지. 어때? 아직도 이따위로 살고 있는 나를 보는 넌 어때? 나는 다시 옆을 돌아봐.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봐. 너는 없어. 다행이야. 네가 이런 나를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날 향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어 보였을까?

생각하지 않을래. 날 무너뜨리지 마.

사람은 변할까, 안 변할까. 나는 모르겠어.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고 있지. 나는 안 변했어. 너에게 그런 모진 짓거리들을 하고도 나는 전혀 변하지 않았지.

언젠가 날 죽여줄래? 나도 알아. 나는 벌을 받아야 해. 그 벌을 내리는 사람이 너일 수는 없을까? 그렇게라도 너에게 했던 내 행동들에 대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어. 응, 나는 그러고 싶을 뿐이야. 그저 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을 뿐이야.

악몽일까? 네가 내 꿈에 나올 때. 일어나면 얼마 간의 눈물이 흐르고 있어. 악몽일까? 그럼에도 계속 꿈을 꾸기를 바란다면. 그럼에도 현실이 아닌 꿈 속에서 살고 싶어 한다면. 이제 너의 얼굴도 목소리도 생각나지 않아. 필사적으로 잊으려 노력했지. 나는 나에게 말했어.

“인간이란 게 원래 이런 존재다. 그러니 너무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나는 그저 인간일 뿐이다.”

나는 너를 지우려 노력했어. 내 뇌에서도, 내 심장에서도. 만약 몸 속에 들어갈 칼이 있었다면 난 너와 관련된 부위를 모조리 도려냈을 거야. 네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 깨달아야 했으니까.

사라져 줄래? 내가 너에게 이렇게 말했던가? 2호선 어딘가에서 내가 너에게 이렇게 말했던가? 아, 너에 대한 기억이 아직 나에게 남아 있구나. 사실이 그래. 너의 없음이 너의 있음을 불러와. 네가 존재하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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