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선이요, 내가 싫어하는 것이 곧 악이다

파란 배경 앞에 선 표정이 진지한 니체 초상화

니체 - On the Genealogy of Morality

사실주의라는 허울 좋은 가면은 실상 침묵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혹은 그럴 용기조차 없을 때 편리하게 집어 드는 위장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 아,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는 좌우의 시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편견 없이 오직 사실만을 말합니다. 우리는 선악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본디 선악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서술할 뿐입니다. 사실주의 소설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새로운 정치적 자세입니다…" 보이는가? 저 창백하고 피골이 상접한 영혼의 초상이. 어떠한 생명의 에너지도, 어떠한 투쟁의 의지도 거세된 채, 그저 현상을 묘사하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자위하는 저 가련한 존재들이.

내가 사회주의에 반대한다고 치자. 내가 언제 사회주의가 논리적으로 그르다고 했던가? 나는 단지 사회주의가 싫을 뿐이다. 그 이유는 하나도 없을 수도 있고, 혹은 일억 개가 넘을 수도 있다. 이유는 언제나 수요에 따라 완벽하게 공급되는 법이니까. 중요한 것은 나의 '싫음'이라는 감정 그 자체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에게는 악(惡)이어야 한다. 내가 혐오하는 것은 나의 적이며, 따라서 나의 적은 섬멸되어야 할 악이다. 내가 언제 선악의 객관적 실체를 규명하겠다고 자처했던가? 선과 악은 나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무기이며, 나의 총칼이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휘두르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로 신성하거나 불변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저 사실주의자들이여! 그들은 사냥을 두려워한다. 피를 두려워하고, 투쟁을 혐오한다. 그래서 그들은 안전한 관찰자의 위치로, 혹은 더 나아가 과거의 신학자처럼 선악의 절대적 기준을 갈망하는 위치로 슬그머니 퇴각한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싫어하는 것을 무조건 악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보라, 그들은 다시 선악의 문제로 회귀하고 말았다! 나는 선악의 저편에 서 있다. 선악은 삶의 역동성 속에서, 나의 의지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빛깔을 바꾸는 것인데, 저들은 선악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삶이라는 거대한 서커스의 현란함과 위험 앞에서 겁을 집어먹고 눈을 가린 채 중얼거린다. "나는 묘사만을 합니다… 나는 중립적입니다… 나는 중도입니다…" 아, 창백한 영혼들이여! 나에게는 차라리 공공연한 나의 적인 공산주의자가 저 유령 같은 중도주의자보다 훨씬 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적어도 그는 자신의 깃발을 들고 싸우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적은 생명 없는 좀비보다 나의 세계에서 더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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