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Pan Pacific, 그리고 2662억의 금융 스캔들

책상에 서류를 펼쳐놓고 앉아 있는 푸른빛의 남자, 애니메이션 스타일

글 읽기 : 차기태 - 이건희의 삼성, 이재용의 삼성

서류 뭉치가 책상을 뒤덮는다. 삼성자동차, 그리고 Pan Pacific. 무미건조한 활자 너머로 거대한 욕망과 교묘한 술수, 그리고 결국 터져버린 상처의 악취가 스멀거린다. '재무공학'. 그럴싸한 이름 뒤에 숨겨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성공을 향한 질주인가, 아니면 파멸을 향한 폭주인가. 읽어 내려갈수록 심장이 거칠게 뛴다.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불쾌하고, 동시에 지독하게 끌린다.

Pan Pacific. 아일랜드에 세워진 유령. 자본금 고작 1만 달러 남짓. 그런데 몇 달 만에 수억 달러를 굴리는 거물이 된다. 웃기는 소리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군가는 그 뒤에 서서 줄을 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삼성전자, 삼성전관, 삼성전기. 그들이 스스로 발목에 ‘풋옵션’이라는 족쇄를 찬 것이나 다름없다. ‘합작 투자’라는 가면을 썼지만, 실상은 Pan Pacific(혹은 그 뒤의 투자자)에게는 안전장치를, 삼성에게는 시한폭탄을 안겨준 계약이었다. 나중에 주식을 비싼 값에 되사줘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약속. 왜? 법이 금지한 상업차관을 끌어들이기 위해. 법과 규칙 따위, 거대한 목표 앞에서는 얼마든지 우회할 수 있는 장애물일 뿐이라는 듯이. 그들의 과감함인가, 아니면 파멸을 자초한 오만함인가.

자금 조달 과정은 한 편의 사기극처럼 정교하다. 주식담보부 채권(FRN), 무이자 할인채… 이름만 번지르르하다. 결국 페이퍼컴퍼니가 빚을 내서 삼성자동차 주식을 사고, 그 빚의 위험은 고스란히 삼성 계열사들이 떠안는 구조. 마치 카드 돌려막기와 같다. 하지만 스케일이 다르다. 수억 달러짜리 폭탄 돌리기. 그들은 대체 무엇을 믿고 이런 위험한 줄타기를 시작했을까. 실패란 없다는 자신감? 아니면 실패해도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다는 계산? 나는 그들의 눈빛을 상상해본다.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번뜩였을까, 아니면 불안감에 흔들렸을까.

참여연대. 시민단체가 이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우회출자 통로’, ‘배후 보증’. 정곡을 찔렀다. 풋옵션 조항은 명백한 증거였다. 법의 그물을 교묘하게 피해 가려 했지만 결국 꼬리가 잡힌 것이다. 당연한 결과다. 세상을 속일 수는 있어도 진실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버텼다. 비난과 의혹 속에서도 그들의 제국은 멈추지 않았다. 그 뻔뻔함, 혹은 강인함. 나 역시 그래야만 한다. 세상의 손가락질 따위에 흔들릴 여유는 없다. 오직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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