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은 사기다

달리의 작품은 사기다

그림 보기 : 살바도르 달리 - 기억의 지속

달리는 시대착오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그는 시간적으로 현대를 살았지만 정신적으로는 근대를 살았습니다. 제가 우리 시대는 ‘전근대’가 문제가 아니라 ‘전현대’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달리는 말하자면 세상 변한 줄 모르고 거드름 피우는 양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고한 신분제는 무너졌고 부르주아가 권력을 잡았습니다. 상원이 아닌 하원이 국정을 운영하고 사업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게 되었습니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은 낙오자가 됩니다. 그러나 낙오자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나보다 멍청한 사람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걸 보라. 이 사회는 무언가 대단히 잘못되었다.”

그들의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식들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이들을 구제해 주는 건 노인연금뿐입니다. 젊은층의 눈총을 받아가며 이들은 연금을 받습니다. 세계는 변했고 권력은 이양되었습니다.

달리는 무엇을 그렸나요? 그는 물론 ‘무의식’을 그렸습니다. 프로이트가 달리에게 당신은 내가 말한 무의식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프로이트는 예술에 있어 그 어떤 평론가나 학자보다 뛰어난 식견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역시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그라디바>나 <창조적 작가와 백일몽>을 볼 때 우리는 그 천재성에 압도당하고 좌절합니다. 어떻게 이것보다 뛰어나게 예술을 분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로이트도 현대인이 아닙니다. 그는 마지막 근대인입니다. 이게 잘못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 누가 시대를 넘어설 수 있나요? 심지어 비트겐슈타인도 기하학은 선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발전하면서 기하학조차 선험적이지 않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프로이트와 비트겐슈타인이 말도 안 되는 천재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모든 인간을 구속합니다. 문제는 시대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자기 시대를 사는 것, 사실 그것도 매우 대단한 겁니다. 진짜 문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겁니다.

달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프로이트는 근대를 살았지만 달리는 현대를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도 무의식을 운운하며 - 심지어 달리가 그린 무의식은 프로이트 말한 무의식도 아니며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을 무의식이라고 말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 예술 활동을 해나갑니다. 무의식의 세계관이 무엇인가요? 인간의 의식을 분석해서 들어가면 궁극적으로 무의식에 닿게 된다는 겁니다. 이는 화학자가 궁극의 입자를 찾으려는 것과 똑같습니다. 물질을 분석하고 또 분석하면 우리는 궁극의 입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의 의식을 분석하고 또 분석하면 인간 정신 활동 전체를 지배하는 궁극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게 근대적 사고방식이고 어려운 말로 하면 환원주의입니다. 환원주의 자체가 이성으로 세계의 근원을 포착할 수 있다는 세계관이고 그렇기에 근대적 세계관입니다.

현대는 어떤가요? 현대는 실증주의 시대입니다. 실증주의가 무엇인가요? 근원이 아니라 표면에 집중하겠다는 겁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섭니다. 우리는 무의식을 이제 고려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정신 활동’이지 그것의 근본적 원인이 아닙니다. 우울증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울증의 근본적 원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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