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는 거짓 선지자다

거짓 선지자는 삶을 망친다.

그림 보기 : 에드워드 호퍼 - Automat

이런 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술이나 철학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예술이나 철학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삶을 바꾸어줄 어떤 것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거 없습니다. 고도는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고도를 기다리는 걸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차가워질 수 없고 그렇기에 마음을 비울 수도 없습니다.

더 나쁜 존재가 있습니다. 이 존재는 의미를 찾는 이들 앞에서 헛소리를 잘도 지껄입니다. 이 존재는 고도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고도는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고, 그러니까 내일 올 것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이 존재는 의미를 찾는 이들에게 허황된 기대를 불어넣습니다. 있지도 않는 의미에 대해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왜 그럴까요? 자신에게 이득이 되니까 그렇겠죠. 이는 철학 교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허황된 망상을 갖게 해야 학생들이 대학원도 가고 그럴 거 아니겠어요? 이렇게 가난은 대물림 되고 허황된 망상도 대물림 됩니다. 수요와 공급이 이렇게 맞아떨어집니다. 헤겔은 아직도 ‘철학자’라고 불립니다.

에드워드 호퍼가 미술에 있어서 이런 존재입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예술에 의미를 불러옵니다. 아! 인간이란 어쩔 수 없기 자기 연민을 하는 존재인가요? 우리는 삶에 ‘배신’ 당했다느니, 세상에 ‘버림받았다’느니 하는 말을 하면서 나를 비극의 주인공을 만듭니다. 한 마디로 질척거립니다. 그냥 어떤 일은 일어났고 어떤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는 걸까요? 차갑게 사실만 바라볼 수는 없는 걸까요? 없습니다. 다만 노력은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 노력이 중요한 겁니다.

현대 예술가들은 싸웠습니다. 현대 예술은 의미를 불러오고자 하는 이들과 의미를 예술에서 밀어내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너무나도 격렬했고 후자의 승리로 끝납니다. 물론 전자를 전멸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시대착오는 언제나 존재하고 언제든 다시 전쟁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이들의 영웅입니다. 시대착오에 잠긴 이들, 예술이 아닌 예술을 감상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 머리와 마음이 차가워질 수 없고 그렇게 뜨거워질 수도 없는 이들, 이들의 영웅이 에드워드 호퍼입니다. 어느 문학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는 슬퍼했다. 그러나 자신이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슬퍼했다.”

호퍼는 입체를 그리고 세계를 고정시킵니다. 이는 예술에 의미를 불러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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