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카다시안 패밀리와 로코코 미술

킴 가다시안과 로코코

그림 보기 : 장 마르크 나티에 - Madame Marsollier and Her Daughter

18세기 중후반부터 공고한 신분제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신분이 존재했지만 귀족들과 상류 부르주아는 취향, 언어, 복식 면에서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위 그림 속 엄마와 딸은 귀족이 아닙니다. 이들은 상류 부르주아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퐁파두르 부인 못지않은 화려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돈의 시대가 오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세계관은 결국 플라톤소피스트 중 하나입니다. 이게 나중에는 칸트와 흄이 되고 칼 포퍼와 비트겐슈타인이 될 뿐입니다. 즉, 인간은 결국 ‘선험성’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로 나뉠 뿐입니다.

한 번 이 질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인가?”

이때 선험성을 믿는 사람은 여러 가지 말을 합니다. 이들은 덕이 있어야 한다느니, 경제를 잘 알아야 한다느니, 러더십이 있어야 한다느니… 등을 말하며 대통령이 될 사람은 저런 자질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선험성을 믿는 사람들은 인간의 성품이 먼저 있고 그 성품이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불러온다고 말합니다. 이들을 인식론적으로 표현하면 플라톤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선험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말할까요? 이들은 간단히 대답합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사람이 대통령감이라고요. 이들은 어떤 사람의 성품이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불러 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그 사람의 성품을 추측하게 할 뿐입니다. 결과가 먼저 있고 그 결과가 그 사람의 성품을 추측하게 할 뿐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사람이 덕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뿐입니다.

18세기부터 ‘선험성’을 향한 본격적인 의심이 싹틉니다. 우리는 그동안 왕이 성스러운 존재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교황이 신의 대리자라는 걸...

Comment

여러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hide comments
...
Back
Cart Your cart 0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Total0
구매하기
Empty

This is a unique website which will require a more modern browser to work!

Please upgrade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