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미술은 리얼리티 쇼다

로코코는 리얼리티 쇼다

그림 보기 : 프랑수아 부셰 - The Luncheon

1. 로코코는 왜 천대받는가?

로코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즉 현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나는 로코코가 미술사에 있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오직 ‘가벼운 예술’ 혹은 ‘향락적 예술’로 취급받는 게 어이가 없다. 로코코에 대한 이런 천대는 이유가 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플라톤주의자로 태어난다. 그대여, 내가 뭐라고 그랬는가? 내가 플라톤주의적 세계관에서 나오는 미술이 뭐라고 그랬는가? 그대여! 벌써 잊어버렸는가! 아! 나의 모든 글이 그대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단 말인가!

그대여, 생각해 보라! 플라톤주의적 세계에서 나오는 그림이 뭐라고 했는가? 그렇다. 고전주의다. 그냥 외워라. 플라톤주의적 세계관, 즉 인간이 세계의 근원을 포착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관에서 미술은 입체가 되고 선이 강조된다. 그냥 외우기 바란다. 어떤 그림이 고전주의적 양식, 즉 입체적이고 선이 강조되는 양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 시대는 플라톤이 승리한 세계다. 고대 그리스, 르네상스 등이 바로 그런 시대다. 알겠는가? 반드시 외우기 바란다.

이제 로코코를 보자. 로코코는 선적인 그림인가, 아니면 회화적인 그림인가? 그대여! 어서 보라! 로코코 그림은 인물과 배경 간의 경계가 뚜렷한가? 색조보다 선이 더 강조되고 있는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르네상스 및 고대 그리스 그림과 위 그림을 비교하기 바란다. 그대는 즉각 로코코 그림이 훨씬 회화적임을 알 수 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로코코는 인간 이성의 절대성을 믿지 않는 시대라는 걸, 적어도 인간 이성의 절대성을 의심하고 있는 시대라는 걸 의미한다. 로코코는 나른하고 부드럽다. 왜인가? 인간 이성의 영향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뭐라고 했는가? 인간 이성은 항상 무언가를 분류하고 구분한다. 또한 인간 이성은 저기 어딘가에 완전한 선(Good)이 있으면 인간은 반드시 저기 어딘가에 있는 완전한 선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플라톤적 세계관의 그림은 무겁고 장엄하다. 플라톤적 세계관이 죽은 시대의 그림은 나른하고 부드럽다. 알겠는가? 이건 매우 중요한 통찰이니 반드시 외우기 바란다.

자, 보라! 나는 앞서 인간은 플라톤주의자로 태어난다고 그랬다. 따라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고전주의를 좋아한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인간은 베토벤을 좋아하도록 태어났다. 따라서 인간은 고전주의가 아닌 예술은 부정부터 하고 본다. 바로크, 로코코, 인상주의 모두 이름 자체가 경멸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나중에 바로크만 긍정적 의미를 되찾는데, 이에 대해서는 내가 상세하게 설명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감정적 존재라는 것, 이성은 오히려 감정의 노예라는 주장은 인간에게 모욕으로 들린다. 그런데 이런 모욕적 주장을 담고 있는 그림이 바로 로코코를 비롯한 고전주의가 아닌 예술 양식이다. 따라서 인간은 우선 로코코를 부정부터 하고 본다. 로코코에서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발견한다. 그래서 더 발작하여 로코코를 공격한다.

하지만 솔직함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되는가? 인간이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감성에 휘둘리는 존재라는 폭로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되는가? 삶을 향한 진솔함이 비난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말하겠다. 오히려 고전주의자들이 편견에 갇혀 있다. 그들의 마음은 좁고 졸렬하다. 예술은 어떤 양식이든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진다.

 

2. 로코코와 현대의 연결성

내가 말했듯이 로코코는 일종의 가상 현실이다. 18세기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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