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반드시 세계관을 반영한다

프란스 할스의 초기 그림을 분석한다.

그림 보기 : 프란스 할스 - 성 게오르기우스 시민 군단 장교들의 연회

1. 미술 양식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잔재를 본다. 인물들은 조금 경직되어 있으며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그림을 그린 프란츠 할스는 나중에 이런 르네상스의 잔재를 아예 벗어나서 바로크 양식으로 향한다.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차이가 무엇인가? 이것만 알아도 당신 인생은 성공한 거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잘 듣기 바란다.

내가 당신에게 묻겠다. 이 세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르네상스는 이데아가 이 세계의 본질이라고 본다. 즉, 르네상스는 플라톤의 세계관과 똑같다. 그래서 르네상스를 르네상스(재탄생)라고 부르는 것이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의 재탄생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본질을 이데아로 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오, 당신은 지금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어느 정도 지능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다.

자, 내가 당신에게 묻겠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연인이 존재한다. 이 연인들의 연애 방식 중에서 더 숭고하고 진정한 사랑에 가까운 연애 방식이 있는가? 즉, 세상에 있는 연인들의 연애 방식 중 진정한 사랑과 먼 것이 있고 진정한 사랑과 가까운 것이 있는가? 만약 당신이 “응”이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플라톤주의지다. 당신은 사랑의 이데아를 믿고 있다.

이데아를 믿는 사람은 개별자를 부정한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각각의 연인의 연애 방식은 ‘진정한 사랑’의 복사품일 뿐이다. 플라톤주의자는 언제나 순수한 단 하나의 이데아가 있으며 거기서부터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야.”라고 말하거나 “그건 진정한 정의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은 자신이 플라톤주의자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 어떤 오염도 없이 순수한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삶의 목표는 그 이데아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크는 르네상스와 다르다. 르네상스가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했다면 바로크는 운동 법칙에 집중한다. 당신, 미적분을 할 줄 아는가? 모르면 제발 미적분 공부를 해라. 미적분을 모르는 사람과는 도저히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 내가 최대한 쉽게 이야기해보겠다. 당신이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하자. 이때 당신의 가장 큰 관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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