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와 꼰대란 무엇인가?

우리는 끊임없는 지기 갱신 속에서 살길 원한다.

철학적 분석 : 우리는 과거의 향수가 아닌 끊임없는 자기 갱신을 원한다

제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건 각 시대마다 각 시대의 세계관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경험론의 시대입니다. 세계는 경험론을 반영하여 정돈되고 있습니다. 근대가 무너지고 본격적인 현대가 된지도 이제 10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시대착오에 잠겨 살길 원치 않습니다. 과거를 향수하며 살길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바로 지금,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철학이 하는 일은 이렇게 시대의 세계관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철학은 학문이 아닙니다. 철학은 세계의 패턴을 정리하는 활동입니다. 우리는 니체를 예언자라 부릅니다. 이는 니체가 시대를 앞서갔다는 말과 같습니다. 도대체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이 쓰이는 걸까요? 니체는 근대를 살았습니다. 니체가 살던 시대에는 인간 지성이 세계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다는 세계관이 세계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니체는 인간 지성에 파산을 선고합니다.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인간 지성이 죽었다.”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신의 시체를 누가 보았나요? 죽은 건 ‘인간이 파악한 신’입니다. 즉, 니체는 인간 지성의 몰락을 예언합니다. 그랬기에 그가 시대를 앞서간 사람입니다.

데카르트는 어떤가요? 데카르트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철학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세계관에 반영인가를 거의 완벽하게 파악했습니다. 데카르트는 함수를 도입합니다. 즉, 해석 기하학을 도입합니다. 실재론의 지배를 받는 세계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존재의 세계이고 하나는 운동의 세계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제가 자세하게 편지하였습니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실재론의 시대임을, 그중에서도 운동의 시대임을 너무나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그래서 그가 철학 역사상 손가락에 꼽힐 만큼 위대한 철학자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철학자는 데카르트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세계관을 정리합니다. 니체 같은 예언자는 매우 드뭅니다.

플라톤은 어떤가요? 플라톤은 시대에 뒤처진 철학자입니다. 플라톤이 살던 시대에 그리스는 이미 민주정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소피스트가 궁극적 승리를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플라톤은 끊임없이 과거의 귀족정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플라톤은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가 좋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가 변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자기 철학을 전개해 나갑니다. 만약 플라톤이 르네상스 시대에 자기 철학을 전개했다면 시대착오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민주정으로 변한 그리스에서 귀족주의적 철학을 전파합니다. 상대주의적인 세계에서 절대주의를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대착오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플라톤은 꼰대입니다.

현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현대는 경험론의 시대입니다. 이 말은 현대는 실존주의적 시대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카뮈는 “부조리”를 말하고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하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 똑같은 말입니다. 이 말들은 다 인간은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그 때문에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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