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게이징의 철학적 배경을 설명한다

슈게이징은 인상주의의 변형이다.

철학적 분석 : 슈게이징은 인상주의의 변형이다

1. 음악에 있어서 지성

저는 현대음악의 형이상학적 배경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현대가 지성이 몰락한 시대라는 겁니다. 지성이 무엇인가요? 추상화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제 슈게이징이 왜 현대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음악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레슨을 받으면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음고(Pitch)는 연속인가요, 불연속인가요?”

이에 선생님께서는 제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질문했습니다.

“우리가 도, 레, 미 이렇게 말하잖아요. 음고는 도, 레, 미로 쪼개지는 건가요? 아니면 음고는 원래 연속적인 스펙트럼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인위적으로 스펙트럼을 도, 레, 미로 쪼갠 건가요?”

선생님은 매우 훌륭하신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제 질문의 핵심을 바로 간파하고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음고는 연속이란다. 네가 말한 대로 음고는 스펙트럼 형태를 띠고 있어. 그런데 인간은 지성(Intelligent)의 동물이고 지성은 사물을 나누고 분류하는 역할을 한단다. 내가 예전에 배음(Overtone)에 대해 말한 거 기억하니? 도라는 음 하나에도 많은 종류의 다른 음들이 들어있단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소리들은 없는 것으로 치고 ‘도’를 ‘도’라고 말하지. 이렇게 음고를 자르고 나누지 않으면 음을 정리할 수가 없거든. 모든 인간은 플라톤주의자로 태어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 그 말이 곧 인간은 지성을 사용하는 동물이라는 걸 의미한단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지성을 사용해서 사물을 분류하고 나누게 되어 있어.”

아, 제 삶은 얼마나 운이 좋은 삶인가요!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난 건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연속을 불연속으로 자르는 게 인간 지성이 하는 일입니다. 음고(Pitch)는 연속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연속하는 스펙트럼을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성을 사용하여 음을 자르고 분류하는 것입니다.

인간 지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 지성은 또 다른 분류를 시작합니다. 어떤 음은 으뜸음이 되고 어떤 음은 딸림음이 됩니다. 이렇게 인간 지성은 각 음에 역할까지 부여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C장조에서 B는 ‘해결되어야 할’ 음입니다. 이는 C장조에서 B의 자연적 특성인가요? 아니면 인간이 부여한 특성인가요? 인간이 부여한 특성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모든 것을 쪼개고 나누어 분류하려 합니다.

이에 대한 반발이 인상주의에서 현대예술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슈게이징은 인상주의 예술의 변형일 뿐 새로운 음악 양식이 아닙니다.

 

2. 인상주의와 르네상스

현대 이르러 이런 지성이 몰락합니다. 지성은 단지 인간이 만든 도구일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인간과는 상관없이 원래부터 있었던 진리인 양 행세하기 시작합니다. 현대는 이런 지성에 파산을 선고합니다.

C장조에서 B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법칙은 없습니다. 또한 음고를 도, 레, 미로 나누는 것도 인위적인 겁니다. 이는 음악의 법칙 같은 게 아니라 단지 우리 습관의 누적일 뿐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스케일이 존재하고 다 각자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술에서의 인상주의가 음악에서도 시작됩니다. 음악은 이제 음고를 분류하지 않습니다. 인상주의가 색의 연속으로 그림을 표현하듯이 음악도 음의 연속으로 음악을 표현합니다. 각 음은 전체 스펙트럼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각각의 음이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이게 바로 드뷔시 음악의 형이상학적 배경입니다.

여러분, 인상주의 그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상주의 그림은 멀리서 전체를 조망해야지 그림의 일부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왜인가요? 인상주의는 지성을 잠재우고 감각으로만 세상을 인식하려 하는 미술이기 때문입니다. 인상주의는 눈이 순간적으로 포착한 ‘인상’을 그리는 예술이지 지성이 ‘종합’한 장면을 그리는 예술이 아닙니다. 지성은 나와 세계를 분리한 후 세계를 조각조각 나눕니다. 그리고 그 조각조각 나눈 부분에 위계를 부여합니다.

르네상스 그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화가는 그림의 모든 부분을 섬세하게 그립니다. 마치 눈이 10개, 아니 100개나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어떤 장면을 볼 때 모든 부분을 정확하게 볼 수 있나요? 없습니다. 인간 눈은 스쳐 지나가는 인상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인상을 인간 지성이 분류하고 종합합니다. 따라서 르네상스는 부분 부분을 돋보기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상주의는 아닙니다. 인상주의는 지성을 잠재운 예술입니다. 인상주의는 세계 밖이 아니라 세계 안에서 세계를 곁눈질로 바라본 예술입니다. 따라서 인상주의는 전체를 한 번에 보아야만 합니다.

 

3. 왜 슈게이징은 편안한가?

우리는 슈게이징이 노이즈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압니다. 또 보컬과 악기의 분류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 역시 압니다. 슈게이징은 이렇게 인간 지성을 잠재운 예술이며, 그렇기에 인상주의의 변형입니다.

지성은 필요합니다. 인간은 패턴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문제는 지성이 자신이 ‘패턴’이 아닌 ‘법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이때 지성은 인간을 매우 피곤하게 합니다. 모든 사물을 나누고 분류하고 위계화하려는 지성에 인간은 피로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인상주의를 보며 마음이 안정됨을 느낍니다. 이는 우리가 인상주의를 보며 지성을 잠재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상주의 회화를 보며 잠시나마 세계 속에 자신을 녹여버립니다. 아, 세계와 나는 본래 하나였는데 지성으로 인해 분리되었습니다. 나는 다시 세계와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강력한 무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숨겨진 욕망을 해결해 주는 게 인상주의 회화입니다.

슈게이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노이즈가 많다고 해도 우리는 슈게이징 음악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듣습니다. 이 역시 슈게이징 음악을 통해 우리가 지성을 잠재우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지성의 폭력성에 지친 시대입니다. 예술은 이렇게 현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잠깐 동안만이라도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줍니다.

예술은 그 시대의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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