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기 : 프로이트 - 어느 환상의 미래
밤은 깊었고, 책장은 또다시 『어느 환상의 미래』의 같은 페이지에 머물러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 늙은 오스트리아 의사의 메스는 어찌 이리도 정교하게 문명의 살갗 아래, 그 역겨우면서도 필연적인 작동 기제를 파헤치는가. 단순한 심리 분석을 넘어 그는 인류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스스로를 기만하며 유지되는 방식을 발가벗긴다. 그리고 나는 이 낡은 책 속에서 이 땅의 맨얼굴을 본다.
한국과 일본.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지긋지긋한 애증의 서사시. 사람들은 분노하고, 역사를 외치고, 불매를 부르짖는다. 물론이다. 그 상처는 실재하고 그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눈으로 보면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심연이 있다. 그는 문명이 구성원들에게 강요하는 본능적 희생, 그 필연적인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로서 '문화적 이상'과 '타자에 대한 경멸'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일본은 우리에게 얼마나 완벽한 '그들'인가. 식민 지배라는 명백한 역사적 부채 위에, 우리는 끊임없이 '반일'이라는 제단을 쌓아 올린다. 그 제단 위에서 우리는 집단적 자기애, 즉 프로이트가 말한 나르시시즘적 만족감을 얻는다. 내부의 불만과 분열, 계층 간의 갈등과 박탈감은 '타락한 일본'을 규탄하는 목소리 속에서 잠시 잊히거나 혹은 그 분노의 에너지로 치환된다.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 우리는 더 도덕적이고 우월하다." 이 얼마나 달콤한 환상인가.
더욱 기이한 것은 나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일본의 문화 – 그들의 정교한 만화, 심장을 파고드는 음악, 미니멀한 디자인, 심지어 그들의 음식까지 – 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서랍 속에는 그녀가 선물했던, 지금은 빛바랜 일본 소설책이 잠들어 있다. 입으로는 일본을 향해 날 선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밤이 되면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그들의 창작물이 주는 대리 만족과 감각적 쾌락에 탐닉한다. 프로이트는 예술이 문명 때문에 억압된 욕구에 대한 '대리 만족'을 제공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이라는 '적'이 만들어낸 예술을 통해 문명적 금기(혹은 그 금기를 강요하는 우리 사회 자체)에 대한 불만을 역설적으로 해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식은 거부하지만 무의식은 갈망하는 도착적인 향유. 이 위선이야말로 프로이트가 말한 인간 정신의 이중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