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치들: 지성의 몰락과 경험론, 그리고 카렌의 눈물

영화 백치들의 한 장면과 고대 철학 또는 이성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중첩되거나 대조되는 모습. 지성의 몰락과 경험론 시대, 예술의 의미를 탐구하는 에세이 주제 시각화.

영상 보기 : 라스 폰 트리에 - 백치들

1. 지성의 몰락

아랫글은 구독자께서 보내주신 편지입니다. 구독자께서 “지성은 몰락했지만 폐기될 수는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맞는 말입니다. 아, 제가 이런 표현을 생각했다면 얼마나 좋았을지요. 좋은 표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몰락했지만 폐기할 수 없는 지성. 이 세계관이 보링거가 밝혔던 추상예술의 근거입니다. 멋진 글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입니다.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백치들’이라는 영화를 보고 쓴 글을 읽었습니다. 저도 그 영화를 보았는데 정말 충격적이고 동시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나 선생님께서 ‘백치들’을 보고 쓴 글은 핵심만을 너무 간결하게 서술하셔서 ‘백치들’을 보지 않으신 분들은 선생님의 글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제가 ‘백치들’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제 글이 마음에 드신다면 다른 분들도 보실 수 있게 웹사이트에 올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백치들’과 같은 현대 예술 - 저는 백치들이 현대예술이라 생각합니다 - 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예술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게 필수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현대의 세계관은 ‘지성의 몰락’입니다. 우리는 종종 포스트모더니즘 주장하는 사람들이 “진리는 상대적이다.”라고 말하는 걸 듣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를 이해하는 게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지성’은 IQ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성’은 추상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자, 감각 너머의 진리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플라톤 철학 전체가 이런 지성을 향한 찬양입니다. 플라톤은 단순히 한 명의 철학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플라톤 철학’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감각 너머에 진리가 있다고 믿는 모든 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섹스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라는 말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때 플라톤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이 사람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지고 싸웁니다. 어떤 사람은 “아니다. 섹스 없는 사랑도 있다.”라고 말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당신이 말한 섹스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며 싸웁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사실 쓸데없는 짓거리입니다. 현대는 저런 질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러므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

현대는 감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걸 인간이 포착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감각으로 포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누군가를 보고 가슴이 떨리곤 합니다. 그런데 현대의 입장에서 그건 신체의 변화이지 사랑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처럼 감각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은 이제 공론장에서 사라집니다. 감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인간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경험한 것만 알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이념을 경험론이라고 하고 현대가 바로 경험론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제 우리는 앞서 말한 “진리는 상대적이다.”라는 의미를 압니다. 우선 진리라는 것 자체를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진리라고 불리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진리는 상대적입니다. 사람마다 ‘진리라고 부르는 것’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푸코 같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자신들이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거들먹거리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이미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가 갈등했고,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가 갈등했고, 칸트와 흄이 갈등했습니다. 세계에는 언제나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고 “절대적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인간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단지 현대에 후자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뿐입니다.

저는 언젠가 어떤 프랑스 철학자가 “사람들은 아직도 신이 죽었음을 - 여기서 신이란 인간이 파악한 신을 말합니다 - 진리가 상대적임을, 과학조차 객관성을 잃었음을 모르고 있다.”라고 말하는 걸 보았습니다. 저는 조금 어이가 없더군요. 누가 모른다는 거죠? 머리 좋은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설마 이 사람은 저기 시골에 사는 농부가 모르고 있다고 말하는 건가요? 농부는 원래 모릅니다. 세계관을 파악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계관을 파악할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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