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라는 허상: 인간은 단지 그 행동만으로 판단 받는다

도덕이라는 이름의 목줄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의지.

니체 - The Antichrist

아, 인간 내면이라는 심연! 그것은 얼마나 편리하고도 기만적인 변명의 도피처인가! 우리는 타인의 어리석은 행동을 목도하고는 관대하게 속삭인다. "그는 본래 선량하고 지혜로운 존재다. 다만 찰나의 실수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그를 그릇된 길로 이끌었을 뿐이다." 이 얼마나 안일하고도 자기기만적인 진단인가! 인간의 내면은 우리에게 영원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으며,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시대의 지적 규약은 바로 이 미지의 것에 대한 겸허한 침묵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 규약을 때로는 실증주의라 칭하고 때로는 회의주의라 부르며 또 때로는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이 모든 사상적 조류의 공통분모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존재의 근원을 향한 깊이 있는 탐구를 포기하고, 인간 인식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다. 인간은 단지 현상의 표피 위를 부유할 수 있을 뿐 결코 존재의 심층에 가닿을 수 없으며, 삶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포괄적인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냉정한 자기 인식.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시대정신이다.

아, 이것이야말로 비판 철학의 가장 첨예한 귀결이다! 비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성의 능력과 한계를 냉철하게 가려내는 작업, 즉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엄밀히 구분하는 지적 단련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대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 숨겨진 본질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것은 순수이성이 자신의 힘만으로 인식할 수 있는 영역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경계 짓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언어비판'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언어라는 도구가 현실을 포착하고 진리를 담아낼 수 있는 한계와 그 불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지속된 이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 앞에서, 이성은 과거의 오만했던 영토를 대부분 상실했으며 그 잃어버린 영토에는 인간 내면의 심오한 비밀 역시 포함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나 다윈의 진화론적 인간관은 이제 빛바랜 과거의 유물이요, 우리 시대의 지적 담론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그대여, 타인을 판단하고자 할 때는 오직 그의 구체적인 행동만을 관찰하고 그것을 근거로 삼으라! 그 사람의 가시적인 행동이야말로 그 사람의 전부이며, 그 이면에 숨겨진 '본질'이나 '내면'을 억측하는 것은 무익한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

도덕이여! 아, 이 또한 얼마나 편리하고도 효과적인 통제의 도구이자 자기기만의 알리바이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도덕적 담론에 대해서도 역시 겸허한 침묵을 요구한다. 우리는 더 이상 추상적인 도덕 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정법의 규율 아래에서 삶을 영위한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고상한 도덕 철학이 아니라 냉철한 민법과 엄격한 형법이다! 우리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지적 유희를 위해 탐독할 수는 있지만, 민법과 형법은 이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숙지해야...

Comment

여러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hide comments
...
Back
Cart Your cart 0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Total0
구매하기
Empty

This is a unique website which will require a more modern browser to work!

Please upgrade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