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다: 이것이 ‘사랑’의 위험성이다

행위에 의미부여를 하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을 망친다.

사뮈엘 베케트 - 고도를 기다리며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신을 위해 신을 포기해야 하고 정의를 위해 정의를 포기해야 하고 사랑을 위해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기심과 오만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 우리가 그럴 수 있다면 왜 고통이 있겠습니까! 아, 우리가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왜 슬픔이 있겠습니까!

선생님, 저는 어떤 사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능력이 너무 부족해서 오래 전에 그 사람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단 한 순간도 그 사람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언젠가 성공해서 다시 그 사람을 만날 거라는 희망을 단 한 순간도 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저를 살게 했습니다. 제가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저 하나 죽어도 세상은 미동도 없다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간은 세계의 부품에 지나지 않고 제 죽음이 파리의 죽음보다 비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언젠가 그 사람을 만나겠다는 희망이, 그 희망이 저를 살게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글을 보니 선생님께서는 제게 그 희망조차 버리라고 말하시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할 것만 같습니다.

“당신은 희망 때문에 산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 희망이 필요한 뿐이었다. 당신은 우선 살고 싶었다. 그래서 희망을 만든 것뿐이다. 당신도 알고 있지 않은가? 당신은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 일이 없다는 것을. 당신은 단지 살고 싶어서 그 사람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아! 정말 그런가요? 저는 단 한 순간도 제가 그 사람을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요,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조금은 고귀한...

Comment

    1. 스튜디오 크로아상 says:
      10월 16 at 12:49

      저는 저분의 고통에 공감합니다. 다만 저는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이 거짓된 달콤함 속에서 사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겠습니다. 사랑을 위해서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사랑은 인간 손에서 더러워지고 타락합니다. 인간이 신을 알 수 있다는 언명으로 신은 교황청의 손에서 더럽혀졌습니다. 이때 몇몇 신자들은 인간이 신에 대해 알 수 없다고 말하며 신을 포기합니다. 이들은 신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신이 인간 손에서 타락하는 걸 볼 수 없었습니다. 그걸 보느니 차라리 신을 포기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이것이 사랑이야.’라고 말하며 사랑을 더럽힙니다. 저는 차라리 사랑을 포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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