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성장은 반드시 다른 인간의 몰락을 불러오고야 만다

국가 경제의 양적 팽창 뒤에 숨겨진 권력 투쟁의 실체를 파헤친다. 한 집단의 번영이 다른 집단의 몰락을 전제하는 냉엄한 리얼리티, ‘밟고 올라선다’는 창조적 의지에 맞서는 패배자들의 저항 본능, 그리고 경제 현상을 가장한 정치적 의지의 충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니체 - On the Genealogy of Morality

국가 경제의 양적 팽창이 모든 구성원의 보편적 염원이라는 순진한 가정은 인간 의지의 복잡한 지형과 그 이면에 꿈틀거리는 다양한 가치 평가의 역학을 간과한 피상적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실상, 공동체의 소위 '성장'이라는 현상 이면에는 특정 유형의 인간이 번성하고 다른 유형의 인간이 위축되는 차등적인 힘의 작용이 숨겨져 있으며, 때로는 한 집단의 상승이 다른 집단의 정체 혹은 몰락을 전제조건으로 삼기도 한다. '모두를 이롭게 하는 발전'이라는 공허한 수사나 파레토 개선과 같은 경제학적 유희는 생성과 소멸, 지배와 복종이라는 생의 근원적 리듬 앞에서 그 의미를 상실한다.

역사 속에서 한 명의 비범한 개인이 출현하여 시대의 풍경을 바꾸어 놓을 때, 우리는 그가 딛고 올라선 무수한 존재들의 그림자를 동시에 목도해야 한다. 일론 머스크라는 현상적 정점은 그 자체로 수많은 경쟁과 극복, 그리고 누군가의 좌절과 희생을 응축한 결과물이다. '밟고 올라선다'는 표현은 단순히 개인적 성공 신화의 잔혹함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모든 창조와 성장이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과 파괴, 그리고 새로운 위계의 정립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냉엄한 진실을 직시하게 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종종 그 정치적 본질, 즉 힘의 투쟁과 가치 설정의 문제를 거세하고 중립적인 법칙과 효율성의 언어로 자신을 위장하려 하지만 그 베일을 걷어내면 모든 경제 현상은 결국 특정 의지가 관철되고 특정 가치가 지배하는 정치적 과정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성장하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저 머스크와 같은 기존의 한계를 부수고 새로운 지평을 여는 '정점의 인간'을 탄생시키는 용광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모든 존재가 동등한 영광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변화의 격랑 속에서 뒤처지거나,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 과정 자체를 견딜 수 없는 '패배자들'은 필연적으로 버려지거나 소외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낀 이들은 성장의 역동성 자체를 부정하고 그 진행을 멈추고자 하는 강력한 반작용적 의지를 발현시킨다. 마천루로 상징되는 야망과 상승의 의지를 혐오하고, 소박한 오두막으로...

Comment

여러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hide comments
...
Back
Cart Your cart 0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Total0
구매하기
Empty

This is a unique website which will require a more modern browser to work!

Please upgrade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