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바머, 난 그를 이해한다 (맨헌트: 유나바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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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series 리뷰 :  넷플릭스 추천작 – 맨 헌트: 유나바머 (7/10)

만약 어떤 사람이 SNS에 외국어를 <글>이 아닌 <단 하나의 문장으로만> 쓴다면 – 그게 영어든, 일본어든, 스페인어든, 프랑스어든 – 그 새끼는 허영만 가득할 뿐 실제로는 그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또 만약에 어떤 이가 SNS에 글을 쓸 때 오래 전에 뒤져버린 철학자들의 이름을 꽤나 많이 – 평균 약 3.7명 정도 – 인용한다면 그 새끼 역시 지적 허영만 가득할 뿐, 자신이 인용한 철학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다. 말하자면 나는 지적 허영으로 가득한 좆밥이다. 그리고 난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학생 운동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나는 이 역시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난 대학 시절 내내 운동권에 몸 담았고, 대부분의 연세대학교 운동권 학생들이 그렇듯 사회적 약자라 불리는 사람들을 <암묵적으로> 무시했다. 청소 노동자 할머니들을 볼 때면 그들이 안쓰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대학도 못 나왔고, 저 나이가 되도록 돈도 없어서 내 책상이나 닦아주고 있으며, 세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자신들의 처지가 얼마나 한심하고 비참한지도 알지 못한다. 나는 명문 사립대 학생으로서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고 그들을 <계몽>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멍청한 노인네들에게 세상이 잘못 되었다고, 대학 본부가 당신들의 적이라고 말 할 때마다 그들은 눈을 껌뻑껌뻑 거리면서 내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해줬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고 무지 몽매한 일반인들을 – SKY 대학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 계몽시키는 것이 <명문 사립 연세대학교>에 다니는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택시 운전사, 청소 노동자, 경비원 등을 내 강의를 들어야 할 일종의 멍청이들로 간주했고 그건 나에게 있어서도 너무 좋은 일이었다. 누군가가 우리 운동권을 공격할 때면 나는 즉시 그들을 <청소 노동자의 권리>를 개똥으로 취급하는 비도덕적 야만인이라고 공격했다. 요즘 <도덕성>이라는 개념은 누군가를 공격할 때만 사용되며, 매우 효과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무지 몽매한 노동자들은 그런 식으로 내게 쓸모가 있었다.

모든 연세대학교 운동권 학생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로스쿨을 준비했다. <사회를 움직이는 위치에 가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한다> 라는 아주 흔하고 흔해빠진 거짓말을 통해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고, 그 누구보다 더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며, 자본주의의 꿀맛을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 누리고 싶은 내 욕망을 감췄다. 그렇게 난 로스쿨에 떨어졌고 또 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로스쿨에 갈 만큼 똑똑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역시 너무나도 늦게 찾아온 깨달음이었다. 나는 운동권 출신답게 곧바로 사회 구조에 내 인생의 모든 책임을 돌렸고, 그 억압적 구조를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 몽매한 인간들이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폭탄 테러를 자행하여 3명의 사상자와 20명이 넘는 부상자를 낸 버클리 대학의 천재 교수 유나바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 역시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든 사회구조를 향해 –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삶을 힘겹고도 성실하게 꾸려나가는 일반 시민들을 향해 – 테러를 저지를 의향이 있었으며, 그것이 혁명으로 가는 길이며 그 과정에서 몇 명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난 레닌이 폭력을 옹호한 것을 항상 옳다고 믿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유나바머의 책을 읽자마자 나의 모든 계획이 산산조각났다. 나는 그 새끼 안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열등감에 찌들어 있으며, 인류를 위한다는 허울 좋은 명목을 내세운 채 실제로는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힘겹게 꾸려나가고 있는 일반인들을 죽였다. 나는 오로지 정의로워 보이기 위해 이용했던 수 많은 청소 노동자들을 생각했다. 사실은 그 누구보다 이 세상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으면서도 그것을 교묘하게 감추기 위해 말하곤 했던 <정의>, <인권>, <노동>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난 아무것도 아닌 빈 껍데기이고 그건 <천재>라고 불렸던 유나바머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고, 난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뿐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생각 모두 인간을 우울감에 빠져들게 하고 황폐하게 만든다.

유나바머는 자신이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고, 인류의 발전이 정점이 다달아 이제는 더 이상 발전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즉, 인류는 이제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으며 그랬기에 오로지 우울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나는 세상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인류는 무언가를 해야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평생 방황하며 우울하게 살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유나바머와 나는 생각의 뿌리는 달랐지만 결국 도달점은 같았다. 그리고 우리 둘 다 틀렸고 그 깨달음 역시 또 너무나도 늦게 찾아왔다. 유나바머는 감옥에서 자살했다. 난 그와 내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난 유나바머를 이해한다. 나 역시 굵은 밧줄로 내 목을 몇 분간 조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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