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앨범 리뷰

Brocolli you too - Graduation

앨범리뷰 : 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9/10)

새벽 3시, 서울은 절대로 잠에 들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할리스 커피입니다!” 나는 이 곳에서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7까지 일을 한다. 이게 나의 유일한 돈벌이며, 나는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버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는, 내 시간과 노동력을 파는 것 말고는 돈을 벌 수 있는 그 어떠한 방법도 알지 못한다. 그것이 네가 가난한 이유란다, 나의 아빠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빠의 이런 언행으로 볼 때, 나는 그가 학창시절에 왕따를 당했거나 적어도 ‘재수없는 학생’으로 통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카페 일은 나쁘지 않았다. 커피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고, 빵을 굽는 것도 재미있다. 문제가 있다면 오랜 시간 동안 서있다보니 다리가 붓는다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가끔 대가리를 오함마로 후려주고 싶은 진상 고객들을 상대 해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오늘은 고객님께서 카페 바닥에 내뱉은 토를 치웠다. 휴지로 구토의 커다란 부분을 제거하고, 나머지 잔해들은 밀걸레로 빡빡 닦아내었다. 바닥은 반짝반짝 거리면서 매우 깨끗한 자태를 뽐냈다. 토를 한 고객님의 면상과는 매우 대조되는 깔끔함이었다. ‘개새끼, 부모님은 생존해 계시니?’ 나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 토를 한 고객님 부모의 안부를 가볍게 물어보고 말았다.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보는 행위는 매우 조심스러워야 하며, 실제 생활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행위라는 것을 난 여성 가족부의 일상생활 가이드라인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끔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람 부모의 안부를 물어보곤 했다. 예를 들면, 길빵을 하는 사람 뒤에서 걷게 된다거나, 인도 위로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는 배달부들을 마주할 때면,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은 잘 계시니? 이 개자식들아.’ 라는 안부물음이 마음 속으로 찾아와버리는 것이었다. 그건 중력의 법칙처럼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나는 내가 지금 내 인생의 어느 부분에 와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한 마디로 이번 생에서 내 인생은 끝장난 것이다. 난 졸업 후에도 이렇게 새벽까지 원두를 갈면서 삶을 이어나갈 것이다. 물론 가끔 망할 놈의 돼지새끼들에게 케익을 팔기도 할 것이고, 커피는 못 먹지만 카페에는 있고 싶은 어르신들에게 유자차 같은 것을 타주기도 할 것이다. 뭐든 상관없다. 뭘 팔든 그건 내가 팔고 싶은 것이 아닐 것이며, 나는 그 빌어먹을 ‘판매 행위’에서 그 어떠한 행복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나는 한때 꿈이 많은 소녀였다.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고,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나는 지금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남자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너무나도 버거운 일처럼 느껴진다. 나의 유일한 행복은 잠을 자는 것과 넷플릭스를 켜놓고 불닭볶음면을 처먹는 것 뿐이다. 그때만큼은 학자금과 꿈 없는 나의 한심한 모습과, 갈수록 못생겨지는 나의 얼굴을 잊을 수 있으니까.

“수고하셨습니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 7시가 되자 나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맥도날드에 빵을 배달하는 아저씨들, CU 편의점에 음식을 납품하는 아저씨들, 그리고 못생긴 비둘기들이 길거리를 채우고 있다. “뒤져버려 그냥.” 나는 비둘기에 말하는 것인지 나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이어폰을 끼고 버스를 기다린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브로콜리 너마저가 나한테 말을 건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 해야해, 넌 행복해야해, 나는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아버린다. 행복하라는 부탁은 너무나도 이루기 힘든 부탁이고, 동시에 너무나도 이루고 싶은 부탁이다. 나는 내 미래를 알고 있다. 꿈은 산산조각 날 것이고, 인간 관계는 나에게 상처만 줄 것이며, 돈은 항상 부족하고, 결국에는 서울에서 내가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그냥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울지 말고 잠이 들면 아침 해가 날아들거야> 브로콜리 너마저가 또다시 내게 말을 건넨다. 그래, 울지 말고 잠에 들자. 그리고 다시 일을 하러 나가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울지 말고 잠이 들면 아침 해가 날아들거야, 울지 말고 잠이 들면 아침 해가 날아들거야, 그래 이렇게 아름다운 노랫말을 듣는 것만으로 괜찮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김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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