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Joji), Ballads 1,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우울

Joji Ballads 1

앨범리뷰 : 조지(Joji) – Ballads 1 (7/10)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내 인생도 예외는 아니다. 조그마한 원룸에서 강남의 사무실로 가기 위해 버스와 지하철에 순서대로 올라탄다. 자기 계발을 위해 귓속에 이어폰을 꽂아 경제 관련 팟캐스트를 틀어놓고서, 아무 생각도 없이 회사 사무실에 도착해 내 자리에 앉는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또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팀장님이 법인카드를 주면서 건물 1층에 있는 폴 바셋에 가서 커피와 쿠키를 사오라고 한다. 나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커피 한 잔을 먹겠다고 늘어선 줄 맨 뒤에 가만히 서서 어제 밤에 본 포르노를 생각한다. ‘스튜어디스’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국산 야동이었다. 분명 같이 섹스를 한 남자가 몰래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을 것이다. 서로 사랑했던 사람들이 섹스를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일본에서 만들어 낸 상업용 AV보다 훨씬 더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어제 본 영상 속 여자는 정말 예뻤고 정말 아름답게 섹스를 해내었다. 영상을 몰래 찍어 올린 남자친구는 정말 개새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주문했던 커피가 나왔고 난 팀장님과 우리 팀원들에게 커피와 쿠키를 대령했다.

내 삶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정말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가버린다. 내 얼굴은 점점 우울해져가고 뱃살도 점점 나와가지만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말하자면 나의 얼굴, 나의 몸매, 나의 재력, 나의 인간관계, 나의 인생 전체가 내 통제 밖에 있으며 나는 내 삶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변화들을 감정적 동요없이 받아들이는 연습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새롭기만 하면 뭐든지 좋다고 찬양하며 자기 스스로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새로운 컴퓨터 언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업, 새로운 뉴스레터 등 새롭기만 하면 – 정말 새 것인지 아니면 과거에 있던 것을 반복하는 것 뿐인지는 묻지도 않은 채 – 열광한다. 나는 그들과 정반대다. 새로운 모든 것들이 나를 구역질 나게 하고, 특히 마치 혁신적인 것을 만들어 낸 것처럼 마케팅 해대는 스타트업 업계 종사자들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난 언젠가 완전히 사회에서 낙오될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자살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인생에 대해서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주말에 나는 카페 앤트러사이트 한남에 앉아 그곳에서 제공하는 훌륭한 커피를 마시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앉아있다. 시끄럽기 짝이 없는 음악이 흘러가고 조지(Joji)의 SLOW DANCE IN THE DARK가 내 귀를 사로잡는다. 그는 아시아 출신 최초로 빌보드 R&B/Hip-Hop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고, 가수로 데뷔하기 이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 퓨디파이보다 훨씬 더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 유튜브 스타였다. 그는 일본-오스트레일리아 혼혈아로 유튜브가 이렇게 유명한 플랫폼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영상활동을 해왔으며, 필티 프랭크(Filthy Frank)라는 인터넷 역사상 가장 훌륭한 페르소나를 만들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나 역시 그의 팬 중 하나였다. 2011년, 나는 당시 내 여자친구에게 필티 프랭크 유튜브 채널을 소개해주면서 이 사람은 분명히 세계적인 스타가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그가 만든 기괴한 영상들을 보더니 “내 스타일은 아닌데…” 라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봐볼게.” 라고 말했다.

당시 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은 무궁화호에 올라탔다. 그녀는 경찰이었고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아주 먼 곳에서 – 무궁화호로 거의 5시간이 걸리는 곳에서 –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5살이 많았지만 전혀 나이 터울이 느껴지지 않았고 내 인생에서 여전히 최고의 여자친구로, 아니 최고의 사람으로 남아있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나는 몇 번 고학력의 여자친구를 둔 적이 있었고 그것은 언제나 내게 괴로움만 가져다주었다. 아주 높은 확률로 고학력의 여자들은 매우 예민했고 자신들이 사회문제와 예술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나와 같이 농담을 주고 받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며 사랑스러운 섹스를 나눌 사람이었지 노무현이나 박근혜에 대해서, 혹은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토론을 나눌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높은 확률로 고학력의 여자들은 유머감각이 매우 떨어질 뿐만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규제하려 들었다. 병신, 호모 같은 단어들을 꺼내려면 그녀들에게 경멸의 눈빛을 받거나 조잡한 사회학 이론을 들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아무튼 그 썅년들은 나를 너무 피곤하게 만들었다.

반면 경찰인 내 여자친구는 정치, 사회면에 대해서 의견을 피력하기에는 조금 지능이 떨어졌으며 그녀 스스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멍청한 년들도 정치에 대해 떠들고 다니는 요즘 시대에 내 여자친구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에는 입을 굳게 다무는 것이 난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 그녀는 필티 프랭크의 공격적인 유머에 익숙해졌고, 우리 둘 모두 필티 프랭크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필티 프랭크가 이제는 더 이상 유튜브를 하지 않겠다고, 뮤지션 조지로서 음악에만 집중하겠다는 발표가 있은 지 며칠 후 그녀는 나와 헤어졌다. 조지는 필티 프랭크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너무 힘들었고 건강상의 문제,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도 생겼다며 단지 행복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에 더 이상 유튜브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주 깔끔한 작별 인사였고, 그는 그 후 뮤지션 조지가 되어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나는 조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녀는 깔끔하게 내게 작별인사를 건넸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 결혼에 대해서 항상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녀였다. 난 항상 확실한 답을 주지 않은 채 얼버무렸다. 결혼은 내게 너무나도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끔찍하게 생각되었다. 그녀는 내게 “지쳤다.”라고 말했다. 아마 동료 경찰 중 한 명과 사랑에 빠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공무원들은 꼭 자기들끼리 결혼을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나는 조지의 음악이 약간은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필티 프랭크라는 캐릭터가 없었다면 조지가 <음악만으로> 이렇게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조지만 과대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아델은 더 심하고, 샘 스미스는 훨씬 더 심하다. 그래도 조지는 나와 다르게 삶에 변화를 주는 것에 성공했고, 대중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뮤지션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갔다. 나는 이별 이후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그 어떤 것에도 열정이 없는 병신 같은 나 자신으로.

조지의 음반을 듣고 있으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와 <진짜 되고 싶은 나> 사이에서 조지가 얼마나 고뇌했는지 알 수 있다. 그녀도 조지의 새 앨범을 들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공격적인 코미디를 하던 사람이 이토록 슬픈 로우파이 발라드를 부르는 것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새 남자친구가 – 경찰일 확률이 높은 그 사람이 – 나처럼 음악을 추천해주기도 할까? 나처럼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주기도 할까? 그래, 이것은 내가 전혀 알 필요가 없는 질문들이다. 나는 카페를 나와 집으로 들어왔고 애써 잠을 청하려 노력한다. 내일은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삶도 분명히 계속 될 것이다. 나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 김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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