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 :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리뷰

Book & Paper - Kant - Enlightment

책 리뷰 : 임마누엘 칸트 –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7/10)

마광수 교수님이 스스로 목을 메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일종의 서글픔을 느꼈다. 너무나도 흐릿하게, 마교수의 가녀린 몸처럼 비틀비틀거리면서 하나의 기억이 찾아왔다. 나는 캠퍼스에서 그를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마 교수는 높은 곳에 위치한 문과대학 건물에서 학교 정문으로 터벅터벅 내려가고 있었고, 한 손에는 불 붙은 담배가 들려있었다. 그는 캠퍼스 안에서 길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는 마 교수의 수업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기에 일종의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랬기에 망설임 없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너무 처참하게 늙어버린 이 노교수는 나에게 정말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한때 천재라고 불렸지만 국어국문학과 전공 수업도 열지 못하는 교수가 되어버린 그. 교수들 사이에서는 물론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저 변태이자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그. 말하자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노인이 바로 마광수였다.

“저… 혹시 제가 쓴 시가 있는데 한 번 봐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아이폰 메모 앱을 열면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기꺼이 그러겠다며, 노인 특유의 찡그리는 인상을 하면서 안경을 이마 위로 걸치고 내 시를 찬찬히 봐주었다. “솔직하네요… 그런데 너무 똑똑한 척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렇게 스마트하지 않다는 게 딱 보이는데…” 이 늙은이는 정말 어눌한 말투로 내 시에 대해 평가를 해주었다. 정말 마교수다운 답변이었고, 맞는 말이었다. 그는 내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학교 정문으로 정말 천천히,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얇은 몸을 한켠 한켠 움직여 나갔다. 나는 다시 그에게 달려가서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봐주셔서… 그리고 힘내세요.” 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마교수는 웃지 않았다. 다만 서글픈 표정을 내게 보이고는 갈 길을 갔다.

나는 칸트의 이 조심스럽게 쓰여진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마 교수의 기억이 떠올랐다. 칸트는 글을 시작하자마자 아주 강력한 어조로 외친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 <알려고 한다>는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스스로 깊게 생각하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좋다는 것에 좋다고 하고, 나쁘다는 것에 나쁘다고 하는 꼭두각시로 살지 말고 스스로 무언가를 탐구해서 나 자신의 주인이 되라는 뜻이다. 칸트는 이러한 과정을 계몽이라 불렀고, 이 글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계몽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의 후반부에서 그는 돌연 입장을 선회한다. “알려고 해라. 하지만 동시에 프리드리히 대왕에 복종해라!”라고 말하면서.

대중들이 계몽을 한다는 것은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그냥 믿었던 종교의 교리가 이제는 논리적으로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어 바꾸고 싶다. 내가 그냥 따랐던 조세 제도가 이제는 정부의 폭력처럼 느껴져서 변화시키고 싶다. 내가 의심하지 않았던 법률제도가 이제는 너무나도 큰 결점을 지닌 것처럼 느껴져서 따르지 않고 싶다. 즉, 계몽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망을 증폭시키며 때때로 그것은 사회에 커다란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칸트는 이를 걱정했다. 개인이 스스로 생각할 자유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그렇기에 장려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혼란도 막고 싶은 철학자의 고뇌가 담긴 글이 바로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불합리 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무너뜨리기만 한다면 결국 사회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고, 무너진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개인이 결코 ‘스스로 생각할 자유’를 가질 수 없다고 칸트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 나는 여기에서 예술의 정치성을 본다. 예술은 ‘허구’라는 무기를 가지고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잘 만든 전쟁영화 하나가 전쟁에 대한 수 많은 뉴스보다 더 전쟁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성폭력에 대해 잘 쓴 소설 하나가 성폭력에 대한 수 많은 뉴스보다 더 성폭력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진실성을 바탕으로, 예술은 사회체제를 무너뜨리기보다 우선 개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려고 한다. 페미니즘 소설은 대중들로 하여금 페미니즘적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 그 소설을 읽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즉 예술은 개인의 마음을 자극해서 세상을 바꾸려하는,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정치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생명체다.

마광수 교수님은 이 정치적 투쟁에서 패배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문학이 오로지 오락을 위한 것이라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것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광수 교수의 작품 역시 – 마교수가 의도했든 안했든 – <육체주의>라는 하나의 정신을 사람들에게 퍼뜨리려 했고, 마광수 교수가 <엄숙주의>라고 부르는 다른 정신을 지지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끝내 패배하고 말았다. 나는 칸트를 읽으며 예술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패배한 노교수를, 끝내 자살해버린 노교수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또 나는 어떤 글을 써내려가야 하나, 어떤 정신을 가지고 글을 써내려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생각을 독자들에게 어쩔 수 없이 알리는 일이고, 그것은 정말로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예술은 약한 사람들이 하는 놀이가 아니다.

– 김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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