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향연 책 리뷰, 사랑을 믿지 않는 세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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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플라톤 – 향연 (10/10)

원나잇 섹스 다음 날은 언제나 조금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부정적인 감정’에 가깝다. 내 선택은 두 가지다. 어제 내게 다리를 벌려주었던 그녀에게 – 나보다 5살이 많았던, 아니 7살이었나? – 그 어떠한 연락도 하지 않고, 혹시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면 그냥 씹어버리는 것이 첫 번째. 내 나이 또래 대부분이 그렇듯이 섹스를 통해서 연애로 들어가는 것이 두 번째. 나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물론, 여자는 내가 그녀에게 ‘마음’이 있기를 바랄 것이다. 아무리 ‘쿨하다’는 여자도 자신이 하나의 오나홀로 여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와 잠을 잤던 그녀도 분명 내가 그녀의 구멍 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매력을 느꼈기를 바랄 것이다. 그녀의 소망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 거대하고, 충족시켜주기 어려운 것이다.

괜히 내 집에서 섹스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내 집 주소를 알아버렸으니까. 요즘 뉴스를 보면 별의별 미친년들이 다 있다. 자기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부 살인을 한다거나, 남자를 강간범으로 몰아버린다거나, 아니면 SNS에 저격 글을 쓰면서 “그 남자 진짜 쓰레기 새끼네.” 라는 댓글을 구걸하는 여자들. 나와 어제 몸을 섞었던 그녀는 적어도 이런 썅년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외로웠기 때문에 나와 잠을 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TV를 켠다. ‘연애 칼럼리스트’, ‘연애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서 <상처 받지 않고 연애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 준다고 말한다. 난 친구들과 만나면 항상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난 ‘연애 컨설턴트’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쓰레기 같고 역겨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그들을 살해한다면 난 살인범을 옹호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다.

하지만 연애 컨설턴트들, 말하자면 연애 박사들이 TV에서 하는 말은 모조리 옳다. 사랑은 사실 별 게 아니다. 일종의 호르몬 작용에 불과하며 대를 잇기 위해서 생겨난 <합리적 감정>에 불과하다. 그들은 몇 가지 밀당 기술에 대해 말해준다. 카톡에는 바로 답장하지 말 것, 관계에 있어서 항상 우위를 점할 것, 네가 없어도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은연 중에 알려줄 것… 그들은 또 섹스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래, 섹스도 사실 별 게 아니다. 그냥 구멍에 막대기 하나를 집어 넣는 것 뿐이니까. 그 역시 종족 번식을 위해 생겨난 <합리적 행위>에 불과한 것이니까. 연애 컨설턴트들은 실없이 쪼개면서 자신들의 경험담을 이야기 한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클리토리스를 굴려주는 게 참 좋았어.”, “알고 보니까 그 남자 거기가 생각보다 너무 작은 거야!”, “내가 만난 여자는 뒤로 할 때 항상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주기를 원했어. 그렇게 하면 흥분하더라니까!” 이 씨발새끼들은 TV에 나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너 정말 개방적이다!” 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환장 했으며, 너무나도 가벼운 웃음을 ‘행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녀에게 연락을 해야 할까? 아니, 그녀가 내게 마음이 있기는 할까? 거절 당하는 것이 너무 두려워 나는 괜히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며 책꽂이 앞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면 난 항상 관련된 책을 읽고서 평상심을 되찾곤 했다. 플라톤의 향연을 꺼낸다.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가장 오래된 책 중 하나니까. 그것을 펼치고 읽는 순간 나는 플라톤의 미친듯한 천재성에 압도 되어 버린다. 사실 이번이 향연을 펼친 지 세 번째이다. 주인공 이름들이 너무 어려워서 첫 번째 시도 때는 읽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두 번째 시도 때는 다 읽었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세 번째로 이 책을 읽자, 플라톤의 텍스트들 하나 하나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플라톤이 사랑에 대한 생각을 <이 문학 작품>을 통해서 얼마나 훌륭하게 표현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난 이 책의 아름다움에, 플라톤의 위대한 용기에 그리고 그것들과 너무나도 대조되는 쓰레기 같은 나의 모습에 눈물을 흘려버린다. 인정한다. 난 병신이고 쓰레기다.

신을 믿지 않는 인간은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다. 신을 믿지 않는 인간들은 오히려 무엇이든지 다 믿어버린다. 사랑을 믿지 않는 인간은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모든 것에 의지하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신도 믿지 않고 사랑도 믿지 않는다.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사랑을 호르몬으로 환원시키고, 신을 뇌 과학으로 환원시키고, 음식을 탄수화물, 단백질 같은 것들로 환원시킨다. 이러한 세상은 내게 있어 공포이자 허무다. 사랑이 호르몬 작용에 불과한데 내가 왜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희생해야 할까? 섹스는 그냥 <몸의 결합>일 뿐인데 내가 왜 한 여자하고만 섹스를 해야 할까? 플라톤은 내게 멍청하고 용기 없는 인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유물론에 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은 맞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철학은 죽었고, 플라톤의 책은 도서관에 먼지만 쌓인 채로 묻혀있다. 나는 휴대폰을 침대 위로 던져 버린다. 다음 주말에 나는 또 충동적인 외로움을 느낄테고 밖으로 나가 나와 똑같은 여자 한 명을 집에 데려올 것이다. 인정한다. 난 병신이고 쓰레기다. 

김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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